[#하루천자] (96) 레디메이드 인생 ③… 아들 창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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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18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소설가·극작가·문학평론가·수필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을 골랐습니다. 전북 임피군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한 채만식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써 온 소설로 등단했고, 곧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계기가 된 작품 《레디메이드 인생》을 필사하면서 채만식의 ‘풍자’를 찾아보세요. /편집자 주

《레디메이드 인생》 등 풍자적 작품들을 발표하기 전까지 채만식은 ‘동반자 작가’ 성향을 보이는 사회고발적 작품을 몇 편 썼다. 동반자 작가라 함은 당시 유행하던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계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쓴 일련의 작가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로, 대표적인 예로 이효석이 있다. 위 사진은 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에 통속성이 가미된 채만식의 대표 장편소설 《탁류》 초판본.
레디메이드 인생 ③ (글자수 812, 공백 제외 611)

삼청동 꼭대기에 있는 집 ― 집이 아니라 삭월세로 들은 행랑방 ― 에 돌아왔다. 객지에 혼자 있으니 웬만하면 하숙에 있을 것이로되 밥값이 밀리고 그것에 졸릴 것이 무서워 P는 방을 얻어 가지고 있던 것이다.

먹는 것이야 수중에 돈이 있는 때에 따라 호떡도 설렁탕도 백화점의 '런치'도 그렇잖고 몇 끼씩 굶기도 하여 대중이 없었다.

볕 구경을 잘 못해서 겨울에도 곰팡이가 쓸고 이불을 며칠씩 그대로 펴두는 방바닥에서는 먼지가 풀신풀신 올랐다. 하도 어설퍼 앉으려고도 아니하고 방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있노라니까 안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며 주인노파가 나와서 캑 하고 기침을 한다. P는 또 방세 졸릴 일이 아득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방세보다도 우선 편지 한장을 들이밀어준다. 고향의 형에게서 온 것이다.

편지를 뜯어 읽고 난 P는 말가웃이나 되게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그러고는 편지를 박박 찢어버렸다.

편지의 요건은 P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P에게는 연전에 갈린 아내와의 사이에 생긴 창선이라는 아들이 있다. 금년에 아홉 살이다.

아내와 갈릴 때에 저편에서 다만 어린애만이라도 주었으면 그것을 데리고 길러가는 재미로 혼자 사는 세상에 낙을 붙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으면 P도 한짐을 덜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아니하였다.

어릴 적부터 소박데기 어미의 손에서 아비의 원망과 푸념을 들어가면서 자란 자식은 자란 뒤에 그 아비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한다. P는 자식을 꼭 찾고 싶은 것은 아니나 아뭏든 장성하면 아비라고 찾아올 터인데 그때에 P는 이미 늙고 자식은 팔팔하게 젊은 놈이 제 어미를 소박한 아비라서 아니꼽게 군다면 그것은 차마 못 당할 노릇이다.

* 단어 풀이
- 말가웃 : 한 말 반 정도의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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