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97) 레디메이드 인생 ④… 솔드 아웃(sold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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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19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소설가·극작가·문학평론가·수필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을 골랐습니다. 전북 임피군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한 채만식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써 온 소설로 등단했고, 곧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계기가 된 작품 《레디메이드 인생》을 필사하면서 채만식의 ‘풍자’를 찾아보세요. /편집자 주

채만식은 다작 작가로 유명하며 소설, 희곡, 동화, 수필, 평론 등 2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서동산(徐東山)’이라는 가명으로 최초의 근대적 장편 추리 소설인 〈염마(艶魔)〉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식교육을 받은 도시인임에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다룬 작가인데 그의 작품에서는 제주도 사투리 말고는 다 나온다고. 똑같이 사투리 활용이 다채로운 김유정이 요절로 30여 편만 남긴 데 비해, 채만식이 지은 200여 편의 작품이 팔도 사투리를 넘나들어서 전집(全集) 내기 힘든 작가로 유명하다. 위 사진은 채만식이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전북 익산시 마동 269번지 초가. 장독대 옆방에서 1950년 6월 11일 오전 11시반에 영면했다.
레디메이드 인생 ④ (글자수 770, 공백 제외 588)

P가 소 부르즈와지 축에 끼이는 인텔리가 아니요, 노동자였더라면 그 동안 거지가 되었거나 비상수단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없다. 그러면서도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다. 그렇지만 죽기보다 더 귀찮은 일은 그를 잠시도 해방시켜 주지 아니한다.

그의 아들 창선이를 올려보낸다고 어제 편지가 왔고 오늘은 내일 아침에 경성역에 당도한다는 전보까지 왔다.

오정때 전보를 받은 P는 갑자기 정신이 난 듯이 쩔쩔 매고 돌아다니며 돈 마련을 하였다. 최소한도 이십 원은… 하고 돌아다닌 것이 석양 때 겨우 십오 원이 변통되었다.

종로에서 풍로니 남비니 양재기니 숟갈이니 무어니 해서 살림 나부랑이를 간단하게 장만하여 가지고 올라오는 길에 전에 잡지사에 있을 때 알은 ××인쇄소의 문선과장을 찾아갔다.

월급도 일없고 다만 일만 가르쳐주면 그만이니 어린아이 하나를 써달라고 졸라대었다.

(중략)

"학교에 보낼 처지가 못되고 또 보낸댔자 사람 구실도 못할 테니까…"

"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레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

(중략)

일찍 맛보지 못한 새 살림을 P는 시작하였다. 창선이가 도착한 날 밤. 창선이는 아랫목에서 색색 잠을 자고 있다. 외롭게 꿈을 꾸고 있으려니 생각하매 전에없이 애정이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창선이를 데리고 ××인쇄소에 가서 A에게 맡기고 안 내키는 발길을 돌이켜 나오는 P는 혼자 중얼거렸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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