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커피 원두 온라인 판매를 위하여 인터넷 쇼핑몰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커피 생두를 직접 로스팅(Roasting: 뜨거운 열로 수분없이 가열하는 조리방법)하여 오프라인에서 파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싼 가격으로 많은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판매 가격이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것이 상식이라고 해도 너무 싼 가격으로 유통됐다.
커피 원두를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기까지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생두를 선별하여 구입하고, 이를 로스팅해야 한다. 그리고 커핑(Coffee Cupping: 커피의 맛과 향을 감별하는 것) 과정을 통해 로스팅한 커피가 원하는 맛과 향을 제대로 구현하는지 점검하고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판매단위 별로 소분하여 포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각각의 단계에 개별적으로 가치를 부여해 커피 원두 판매가격에 반영한다. 여기에 적절한 마진을 더한 최종 판매가격은 생두 구입가격의 몇 배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많은 인터넷 쇼핑몰이 내가 구입한 생두 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한다. 생두를 대량으로 구입하면 더욱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봤던 인터넷 쇼핑몰 가격은 대량구입을 통한 원가절감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커피 생두 가격은 커피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등급은 바로 커피 품질로 이어진다. 커피는 원산지와 품종, 가공과정과 재배 방법에 따라 그 품질이 천양지차이다. 심지어 같은 농장에서 생산한 커피마저 모두 균일한 품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커피 품질을 차별화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기준으로 품질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일반적으로 SCAA(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와 COE(컵오브엑설런트) 분류 기준에 따른 등급이 통용되고 있다.
이 등급은 로스팅 전 커피 생두에 대한 분류 등급을 의미한다. 흔히 일반 커머셜 커피, 하이 커머셜 커피, 프리미엄급 커피, 스페셜티 커피,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 수퍼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 나인티플러스 커피로 분류한다.
SCAA는 다양한 평가 기준에 의한 점수 85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커머셜 커피와 프리미엄 커피로 나눈다. 85점 이상은 스페셜티 커피,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 수퍼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로 또다시 나눈다. SCAA는 눈으로 보이는 모양, 크기, 색깔, 결점두수, 수분 함량, 밀도 등의 외적인 면과 커핑을 통해 평가되는 향미의 점수를 합하여 점수를 매긴다.
COE(Cup of Excellent)는 매년 중미지역에서 커피 품질을 평가하는 대회의 명칭이다. 각 커피 생산국의 여러 농장에서 출품한 커피를 평가하여 스페셜티 커피를 선별하는 대회이다. COE는 대회에서 10위 내에 든 커피만을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른다.
COE 대회에서 순위 10위 내에 들면 그 농장의 커피 가격은 월등하게 차별화되어 높게 책정된다. 생산지 농민의 입장에서는 한해 농사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남미 커피 농장은 대회 입상을 위해 매년 커피 품질 향상을 위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커피의 대부분은 커머셜 커피이다. 스페셜티급 이상의 커피는 10% 남짓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머셜 커피의 가격을 매일 뉴욕선물시장거래소가 표준가격으로 결정한다. 이 가격을 토대로 각 생산국의 커피 거래가격을 결정한다. 스페셜티 커피 가격에 비하여 월등히 싸다.
최근 세계 커피시장은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흘러간다. 스페셜티 커피란 일반적으로는 대량생산으로 대량유통되는 커피가 아니라 원두의 생산지와 품종, 로스팅 정도 등에 따라 차별화되어 판매되는 고급커피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세계 커피 소비시장을 미국이 주도했다. 당시 미국의 대형 커피 회사들은 커피의 원산지와 품종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일정 비율로 배합하여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이런 커피들은 주로 수퍼마켓이나 아울렛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그런데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창업한 피츠커피(Peet’s Coffee and Tea)나 1971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창업한 스타벅스(Starbucks) 등의 커피 전문점은 고품질 생두를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를 원산지와 로스팅 정도별로 구분해 고객에게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소비자들은 종래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똑같은 커피 맛이 아닌 커피 본래의 맛을 알게 되었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커피와 차별화 시키기 위하여 전문 카페에서 생두의 원산지와 품종별, 로스팅 정도별, 분쇄(ground) 상태별로 세분하여 제공하는 커피 상품의 홍보용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전문 카페에서 판매하는 고급 커피 음료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스페셜티 커피는 1987년 이후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스타벅스가 종래의 홀빈(Whole Bean; 로스팅후 분쇄하지 않은 상태의 원두) 판매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카페를 가정과 직장 이외의 이른 바 ‘제3의 장소(Third Place)’로 제공하며 매장 확산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스페셜티 커피가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로스팅이나 추출방식 못지않게 커피 재배 방식과 수확 후 가공처리 방법도 커피의 맛과 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커피 업계는 개별 커피의 원산지와 품종, 가공 과정과 재배 방법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커피생두를 판매하는 도매 유통업체도 커피 생두를 유통함에 있어 자체 기준에 따라 생두의 품질과 향미의 특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제공한다.
구매자는 이 점수와 등급을 통해 어느 정도 향미와 품질 정도를 예측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저자본 로스터리 카페는 커피 생두를 구입하기 앞서 도매 유통업체에서 제공하는 개별 커피 생두에 대한 프로필을 사전에 검색하고 샘플을 제공받아 로스팅을 한 후 원하는 맛과 향미를 구현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커피를 구매할 때 가격 뿐 아니라 커피 생두의 생산지, 생산고도, 생산연도, 생두의 향미특성, 로스팅 정도, 추출방법, 추출했을 때 나타나는 향미특성까지 고려하는 것이 좋다. 내가 진짜 원하는 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현명한 커피 구매가 필요한 것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혜경 칼럼리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에서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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