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111) 메밀꽃 필 무렵 ①… 대화 장으로 가기로 한 장돌뱅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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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06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 필사감으로는 일제강점기 작가·언론인·수필가·시인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골랐습니다. 1936년 〈모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서사 방식에서 상당량의 묘사를 사용하면서도 그 수준이 높아 필력만으로 한국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듣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이효석은 아호가 가산(可山)이고 필명으로 아세아(亞細兒), 문성(文星)을 쓰기도 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에서 태어나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 왼쪽 사진이 고교 시절의 이효석)를 거쳐 1925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30년에 동 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평양에서 숭실전문학교,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했다. 1936년 10월 잡지 《조광(朝光)》에 발표한 〈메밀꽃 필 무렵〉(오른쪽)은 이효석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 ① (글자수 763, 공백 제외 581)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 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 선달에게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붓하게 사 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가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 선달이 그날 번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중략)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주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 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주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 단어 풀이
- 나꾸어 보다 : 상대방의 의중을 떠 보다
- 드팀전 : 옷감 파는 가게
- 흐붓하게 : 흐뭇하게
- 화중지병 : 畵中之餠,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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