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112) 메밀꽃 필 무렵 ②… 동이를 혼내는 허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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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07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 필사감으로는 일제강점기 작가·언론인·수필가·시인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골랐습니다. 1936년 〈모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서사 방식에서 상당량의 묘사를 사용하면서도 그 수준이 높아 필력만으로 한국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듣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어린 시절의 이효석은 한학자인 부친의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이인직의 〈혈의 누〉, 최찬식의 〈추월색〉·〈안의 성〉 등의 신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에 심취했고,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서구문학을 탐독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특히 체호프(Anton Chekhov)의 단편소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낭만주의 문학,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의 희곡 및 헨리크 입센(Henrik J. Ibsen)의 현대 드라마 등을 읽고 받은 영향은 이효석 문학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는 1939년 평양 대동공전 영문학 교수 시절의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② (글자수 815, 공백 제외 614)

충주집 대문에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빨끈 화가 나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 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 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 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뜩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 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된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하고 그 자리는 조 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 데다가 웬일이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 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 단어 풀이
- 짜장 : 말 그대로 틀림없이
- 서름서름하다 : 사이가 자연스럽지 못해 몹시 어색하다
- 낫세 : ‘나잇살’의 비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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