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고전을 월·화요일과 목·금요일에 연속 게재하고, 수요일에는 짧으나 깊은 공감을 주는 콘텐츠를 골라 제시함으로써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박경리의 대표 장편 《김약국의 딸들》은 16일과 17일 3·4편으로 이어집니다.

소설가 김훈(金薰, 1948~ )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2015, 문학동네) 중에서 한 대목을 골랐습니다. 책의 표제글인 〈라면을 끓이며〉는 매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김훈(왼쪽)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한때 기자를 지낸 자전거 레이서이다. 그의 《라면을 끓이며》(오른쪽)는 총 5부로 구성되어있는 산문집으로, 각 부는 ‘밥’, ‘돈’, ‘몸’, ‘길’, ‘글’로 분류되어 있다.
김훈(왼쪽)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한때 기자를 지낸 자전거 레이서이다. 그의 《라면을 끓이며》(오른쪽)는 총 5부로 구성되어있는 산문집으로, 각 부는 ‘밥’, ‘돈’, ‘몸’, ‘길’, ‘글’로 분류되어 있다.
라면을 끓이며 / 김훈 (글자수 485, 공백 제외 372)

(전략)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 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 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는가. 그 영육(靈肉) 복합체는 유년의 천막학교에서 미군들한테 얻어먹은 레이션(ration; 전투식량)의 맛까지도 흔들어 깨운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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