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디지털 카메라·캠코더·렌즈·스마트폰 카메라 등 광학 업계 이슈를 집중 분석합니다. [편집자주]

사진·카메라 역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겨온 공룡 기업, 코닥.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경쟁에서 밀려나 시장 점유율을 뺏기다 급기야 2012년 파산까지 신청했습니다. 어찌어찌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사진을 포함한 주요 사업과 특허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코닥이 후지필름처럼 제약 부문에 손을 댄다. / 차주경 기자
코닥이 후지필름처럼 제약 부문에 손을 댄다. / 차주경 기자
파산은 극복했지만, 이후 코닥의 행보는 수난 그 자체입니다. 최근에는 가상화폐 사업에 손을 댔다가 욕만 먹으며 또 한번 쓴맛을 봤습니다. 절치부심하던 코닥은 이번엔 ‘OOO’ 부문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신의 한수’가 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주가가 2290% 오르기도 했습니다. ‘OOO’의 정체는 ‘의약품’입니다. 필름과 사진 기업의 대명사(였던) 코닥이 의약품 기업이 된다니,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데 어떻게 이리 많은 관심과 투자금이 모였을까요?

코닥 "제약 회사로 변신" 주가 2290% 급등

월스트리트저널의 7월 28일(이하 현지시각)자 보도에 따르면, 코닥은 의약품 원료 생산 기업이 되기 위해 미국 정부에게 7억7500만달러(9254억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코닥은 히드록시클로로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로 극찬한 항 말라리아제에 쓸 원료를 만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에도 복제약, 특허가 끝난 의약품 생산에 쓸 원료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미국 투자자들은 이 소식에 열광했습니다. 보도 전 2.62달러(3128원)에 불과하던 코닥 주가는 하루만에 11.8달러(1만4090원), 450% 급등합니다. 이틀 후 코닥의 주가는 60달러(7만1646원), 무려 2290%나 폭등합니다. 1억달러(1194억원) 수준이던 코닥의 시가 총액도 단숨에 26억달러(3조1046억원)를 넘게 됩니다.

의약품을 만들거나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의 주식, 이른바 ‘바이오 주’의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코닥만큼 주가가 크게 늘어난 곳은 없습니다. 투자자가 코닥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코닥을 극찬해서? 많은 돈을 대출받아서?

아닙니다. 필름 제조사에서 의약품 제조사로 변신한 ‘후지필름’이라는 성공 모델이 있는데다, 코닥의 잠재력이 후지필름 이상인 덕분입니다.

필름 기술 응용 성공한 후지필름의 전설 재현할 수 있을까

후지필름은 필름 카메라용 필름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필름을 거의 안씁니다. 그럼에도 후지필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비결은 필름 기술을 응용한 ‘헬스케어·의약품 사업’입니다.

필름을 만들려면 다양한 화학물질을 정밀하게 다뤄야 합니다. 고순도 화학물질을 만들고 정밀하게 다루는 기술과 설비는 필름 외에 의약품과 화장품, 바이오 의료품 등을 만들 때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의약품은 고부가가치 상품, 화장품은 수요가 견조한 상품입니다. 자연스레 매출이 해마다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후지필름은 필름을 만들 때 쓰는 콜라겐을 응용해 화상을 입은 피부를 대체할 ‘재생의료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필름 입자를 정밀히 다듬는 기술로 극초미세바늘을 만들고, 이를 시트(점착용지)에 붙여 ‘안 아픈 주사’도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로 잠깐 주목 받은 의약품 ‘아비간’을 만드는 곳도 후지필름입니다.

후지필름 필름은 20㎛ 박막에 100여종의 화합물(왼쪽)을 넣어 만든다. 간 세포 하나 크기가 20㎛다. / 후지필름
후지필름 필름은 20㎛ 박막에 100여종의 화합물(왼쪽)을 넣어 만든다. 간 세포 하나 크기가 20㎛다. / 후지필름
필름 기술을 훌륭히 응용해 새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든 덕분에, 후지필름은 2018년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립니다. 매출은 2조4315억엔(27조3964억원), 영업이익은 2098억엔(2조3638억원)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40% 이상이 의약품, 화장품과 바이오 의료품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본업이었던 필름 사업 매출은 집계하기 곤란할 만큼 작아졌습니다.

코닥은 한세기를 훌쩍 넘어 1888년부터 필름을 비롯한 화학물질을 다뤄왔습니다. 기술이면 기술, 설비면 설비, 어느 하나 후지필름보다 뒤쳐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코닥은 운도 좋았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주제를 걸고 미국 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코닥은 미국 기업인데다, 미국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낸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의약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흡족해하며 지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코닥이 앞으로 미국의 복제약 재료 25%를 생산할 것이라며 추켜세웠습니다.

코닥의 앞날이 무조건 밝을까요? 보장은 없습니다. 후지필름도 사업 구조를 바꾸며 진통을 겪었습니다. 코닥은 수많은 특허와 기술, 설비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단기간에 의약품 제조에 맞게 다듬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의약품뿐 아니라 의료기기, 소모품 등 풍부한 라인업을 가진 후지필름에 비해, 코닥은 이제 겨우 의약품 하나를 복제 생산한다고 밝혔을 뿐입니다. 과연, 코닥은 후지필름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요?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