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을 잘 뜯어보면 공부할 만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데없지만 알아두면 기한 느낌이 드는 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펍지주식회사의 배틀로얄게임 배틀그라운드(PUBG, 배그)에는 대표적인 상징 2개가 있다. 치킨(최후의 승자가 됐을 때 나오는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메시지에서 유래)프라이팬이다.

프라이팬은 낫, 빠루, 마체테와 함께 배틀그라운드의 근접무기 4종 중 하나다. 프라이팬은 이 게임에서 가장 강한 근접무기다. 프라이팬의 피해량은 80이고, 다른 근접무기의 피해량은 60, 맨손은 18이다. 하지만 프라이팬이 배그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유는 단지 강해서가 아니다.

배그 프라이팬에는 숨은 능력이 있다. 게임 내에서 이 무기는 어떤 총알이든 상처 하나 없이 튕겨낼 수 있다. 이 덕에 다른 방어구와 달리 내구도도 없어서 허리춤에 차고다니면 훌륭한 허리·엉덩이 보호구가 된다. 심지어 실전에서 활용하기는 어렵지만, 날아오는 수류탄을 보고 마치 야구하듯 프라이팬으로 쳐서 방어할 수도 있다.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프라이팬으로 총알을 막는 장면 / 로지컬 인크레먼츠 유튜브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프라이팬으로 총알을 막는 장면 / 로지컬 인크레먼츠 유튜브
실제로도 프라이팬이 총알을 막을 수 있을까. 2017년 유튜브 ‘로지컬 인크레먼츠(Logical Increments, 해외 PC·하드웨어 정보 사이트)’ 채널에서 배틀그라운드에 등장하는 총기의 실제 모델 Kar98K, M1911(게임 내 P1911), 베레타 92(P92)로 실험을 진행했다.

M1911은 프라이팬에 구멍을 뚫고 프라이팬을 가로로 쪼갤만한 긴 금을 냈다. 하지만 총알 자체는 프라이팬을 관통하지 못하고 조각에 박혔다. 베레타92는 프라이팬을 관통해 수박에 관통상을 입혔다. Kar98K는 프라이팬을 뚫고도 수박을 산산조각낼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현실에서 프라이팬의 방탄 기능은 미미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Kar98K은 프라이팬을 관통하고 뒤에 있는 수박까지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 로지컬 인크레먼츠 유튜브
Kar98K은 프라이팬을 관통하고 뒤에 있는 수박까지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 로지컬 인크레먼츠 유튜브
그렇다면 어째서 게임에서는 프라이팬이 무적의 무기로 등장하는 것일까. 사실 ‘방탄 프라이팬’은 개발자의 실수로 탄생했다.

브랜든 그린 플레이어언노운 프로덕션(암스테르담 소재 펍지주식회사 개발 스튜디오) 디렉터가 배그를 개발할 때 마렉 크라소우스키 프로그래머에게 ‘프라이팬에 총알이 튕기도록 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들은 프로그래머가 장난삼아 방탄 기능을 넣었고, 이를 잊은 채 게임을 출시한 것이다. 이후 이용자 사이에서 ‘방탄 프라이팬’이 유명해지자 마렉 프로그래머는 그제서야 프라이팬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프라이팬의 방탄 기능은 현시점에도 여전하다.

방탄 프라이팬은 펍지주식회사의 상징이 되었다. 프라이팬 와펜, 키링 등 캐릭터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은 물론, 공식 e스포츠 대회 트로피로 사용하기도 한다. 2017년 10월에는 이동섭 전 의원이 국정감사장에 황금 프라이팬을 들고나와서 게임 업계 진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PGI) 2018에서 우승한 뒤 프라이팬 모양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젠지 구단 선수의 모습 / 펍지주식회사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PGI) 2018에서 우승한 뒤 프라이팬 모양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젠지 구단 선수의 모습 / 펍지주식회사
황금 프라이팬을 든 이동섭 전 의원 / 이동섭 의원실
황금 프라이팬을 든 이동섭 전 의원 / 이동섭 의원실
철로 만든 프라이팬이 총알을 못막는다면, 섬유로 구성한 방탄복은 어떻게 총알을 막을까. 방탄복은 케블라 섬유가 마치 ‘그물’과 같은 작용을해 총알을 막도록 설계된다. 케블라는 미국 듀퐁 사가 1973년에 아라미드 섬유의 상용화에 성공해 개발한 합성섬유로, 강도가 강철의 5배쯤에 달한다.

이 실로 짠 섬유를 10~20장쯤 겹치면 총알을 막을 수 있다. 총알이 섬유를 누르면서 당기면, 실이 견디는 힘인 인장강도가 커지면서 관통을 막는다. 총알이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걸리는 셈이다. 총알에서 발생하는 열이 섬유를 녹이면서 응집 작용을 일으키면 총알이 느려지는 효과도 있다.

프라이팬을 각종 총기로 쏴보는 영상 / 로지컬 인크레먼츠 유튜브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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