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시네마카메라·교환식렌즈 등 광학업계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광학기기 생산량은 활황기 2010년의 10분의1 이하로 줄었다. 광학기업의 실적도 생산량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광학업계는 구조조정과 사업 부문 개편 등 체질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제품 생산량과 매출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소비자들이 광학업계를 보는 시선도 이전보다 차갑다. 시장을 뒤흔들 우수한 신제품이 나왔지만, 열기는 미지근하다.

안타깝다. 사진은 ‘시간을 잡아두는 타임머신’이다. 소중한 기억과 기록을 남기는데 가장 쉽고 좋은 도구다. 사진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만드는 도구인 광학기기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엷어진다.

더 안타까운 것은, 광학기기의 몰락을 업계가 자초했다는 점이다. 변화·협업·혁신을 등한시한 탓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광학기기를 포함한 정보통신기기 업계의 법칙이다. 변화하기 위해 다른 산업계와 협업하고, 이를 토대로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꾸준히 시도한 업계는 성장했다. 스마트폰과 전기차가 좋은 예다. 반면, PMP와 MP3 등 변화와 협업, 혁신을 게을리한 업계는 몰락했다. 이 길을 이제 광학업계가 걷는다.

광학업계는 지금까지 ‘사진 화질’이라는 ‘전통’만 좇았다. 변화·협업·혁신을 시도하지 않았다. 활황기에 모은 폭발적인 인기에 안주했다. 지리 특성(광학기업 대부분이 갈라파고스의 대명사인 일본 기업이다)도 한 몫 했다.

그 틈을 스마트폰이 파고들었다. 사진이라는 전통을 지키면서 휴대성이라는 변화를 시도했고 통신망을 활용한 온라인 서비스와의 협업도 시도했다. 팝업 카메라, 잠망경 줌 등 광학 한계를 뛰어넘을 혁신, 인공지능(AI) 사진 자동 보정과 피사체 인식 등 촬영 편의를 개선할 혁신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원하는, 소비자를 유인할 혁신을 선보였다.

소비자는 ‘크고 무겁고 비싸고 쓰기 어렵지만 사진 화질만은 좋은’ 디지털 카메라를 외면했다. 대신 ‘사진 화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작고 가볍고 싼데다 쓰기도 쉬운’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스마트폰은 불과 5년도 채 되기 전에 디지털 카메라로부터 ‘사진을 만드는 도구’의 지위를 빼앗았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변화·협업·혁신을 업고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고도, 광학업계는 여전히 여기에 인색하다. 소비자와 스마트폰은 변하는데, 광학기기만 변하지 않는다.

최신 디지털 카메라에는 스마트폰의 AI 장면 인식 기능은 커녕, 온라인 서비스 호환 기능조차 없다. 사실 있지만,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쓰기 불편하고 속도도 느려 소비자가 외면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 다운로드 횟수는 수천만~수억회를 가뿐히 넘는다. 반면, 디지털 카메라 앱의 다운로드 횟수는 많아야 1000만회쯤이다.

광학업계 전략에도 변화·협업·혁신은 보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고화질 사진을 찍으려는 소비자’나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한다고 밝힌다. 지금 이대로라면, 혁신이 없다면 이 전략도 비관적이다. 기존 디지털 카메라 소비자마저 속속 등을 돌리는 마당에, 스마트폰 카메라의 혁신을 보고 눈이 높아진 새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을까.

코닥과 콘탁스, 롤라이와 카시오 등 이름난 광학기업이 차례차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어 수십년간 광학업계를 일군 주역 올림푸스가 사업을 포기했다. 변화·협업·혁신을 등한시한다면, 광학업계 공룡들은 점점 여위다가 끝내 쓰러질 것이다. 다음 차례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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