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는 김희탁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나노융합연구소 차세대배터리센터) 연구팀이 세계에서 보고된 모든 레독스 흐름 전지 중 가장 수명이 긴 수계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 개발에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에너지와 환경과학(Energy and Environmental Science) 9월호에 게재되고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이번 연구는 이주혁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박사과정이 제1 저자로 참여했다.

고밀도 탄소 결함 계면을 통한 아연 덴드라이트 형성 억제 기술 개요도/ KAIST
고밀도 탄소 결함 계면을 통한 아연 덴드라이트 형성 억제 기술 개요도/ KAIST
최근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 피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및 심야 전력을 대용량으로 저장하고, 그 에너지를 설비에 공급해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에너지저장시스템(이하 ESS) 기술이 각광받는다.

대부분 ESS는 값이 저렴한 ‘리튬이온전지’ 기술을 채택했다. 하지만 리튬이온전지는 태생적으로 발화로 인한 화재 위험성 때문에 대용량의 전력을 저장하는 ESS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7년~ 2019년까지 2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리튬이온전지로 인한 ESS 화재사고 33건 가운데 가동이 중단된 곳은 전체 중 35%에 달한다. 집계된 손해액만도 7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배터리 과열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계(물) 전해질을 이용한 레독스 흐름 전지가 주목을 받는다. 초저가의 브롬화 아연(ZnBr2)을 활물질로 이용하는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는 다른 수계 레독스 흐름 전지와 비교할 때 높은 구동 전압과 함께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1970년대부터 ESS용으로 개발돼왔다.

레독스 흐름 전지는 레독스 흐름 전지는 양극 및 음극 전해액 내에 활물질을 녹여 외부 탱크에 저장한 후 펌프를 이용해 전극에 공급하면 전극 표면에서 전해액 내의 활성 물질의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지다.

문제는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가 아연 음극이 나타내는 짧은 수명 때문에 상용화가 지연된다는 점이다. 아연 금속이 충·방전 과정 중에 보이는 불균일한 돌기 형태의 덴드라이트 형성은 전지의 내부 단락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덴드라이트는 아연 이온이 환원되어 금속 전극 표면에 증착될 때, 금속 표면 일부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나뭇가지 형태의 결정이다.

전문가들은 덴드라이트 형성 메커니즘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충전 초기 전극 표면에 형성되는 아연 핵의 불균일성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학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균일한 핵의 생성을 유도하는 기술이 경쟁적으로 개발했지만 충분한 수명향상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김희탁 교수 연구팀은 낮은 표면에너지를 지닌 탄소 전극 계면에서는 아연 핵의 ‘표면 확산(Surface diffusion)’을 통한 ‘자가 응집(Self-agglomeration)’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양자 역학 기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전송 전자 현미경 분석을 통해 자가 응집 현상이 아연 덴드라이트 형성의 주요 원인임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특정 탄소결함구조에서는 아연 핵의 표면 확산이 억제되기 때문에 덴드라이트가 발생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탄소 원자 1개가 제거된 ‘단일 빈 구멍 결함(single vacancy defect)’은 아연 핵과 전자를 교환하고, 강하게 결합함으로써 표면 확산이 억제돼 균일한 핵생성 또는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김 교수 연구팀은 고밀도의 결함 구조를 지닌 탄소 전극을 아연-브롬 레독스 흐름 전지에 적용했다. 리튬이온전지의 30배에 달하는 높은 충·방전 전류밀도(100mA/㎝2)에서 5000사이클 이상의 수명 특성을 구현했다. 이는 지금까지 다양한 레독스 흐름 전지에 대해 보고된 결과 중 가장 뛰어난 수명성능을 지닌 전지다.

김희탁 KAIST 나노융합연구소 차세대배터리센터장(교수)은 "차세대 수계 전지의 수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제시한 게 이번 연구 성과다"라며 "기존 리튬이온전지보다 저렴하고 에너지 효율 80% 이상에서 5000 사이클 이상 구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및 ESS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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