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박' 마다 않는 AMD의 간절함, 삼성에는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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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14 06:00 | 수정 2020.10.14 11:56
요즘 AMD의 행보가 거침없다. 차세대 CPU인 라이젠 5000 시리즈를 성황리에 발표하더니, FPGA(프로그래밍 가능한 반도체) 부문 대표 기업 자일링스(Xilinx)를 300억 달러(약 34조5000억 원)에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그야말로 잘 나가는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실상 AMD가 현재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CPU 시장에서 좀 먹고 살만해 져서 주위를 돌아보니, 이미 경쟁사들은 그 다음 단계인 인공지능(AI) 분야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성사 여부를 떠나 AMD의 ‘자일링스 인수 시도’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AMD의 현재 기업 규모로는 자일링스를 인수하는 것이 무리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이번 인수 시도에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AMD가 다소 무모할 정도의 ‘도박’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와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일링스의 대표 상품인 FPGA는 필요에 따라 특정 목적에 특화된 기능과 성능을 ‘재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설계하기에 따라 AI 분야에서 GPU를 확실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차세대 기대주로 꼽힌다. AMD가 자일링스 인수에 적극적인 것도, 경쟁사들보다 뒤처진 AI 분야에서 단번에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업계 선도 기업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MD의 자일링스 인수설이 불거지자 그제서야 삼성전자가 자일링스 인수를 고려하기도 했다는 말이 나온다. 오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자일링스도 인수 대상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것.

삼성전자가 진정 ‘비메모리 반도체 1위’를 달성하고 싶다면, 자일링스를 비롯한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유망 기업들을 그저 간만 보고 끝나는게 아니라, 본격적인 인수합병 전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지금의 모양새만 보면 ‘비메모리 반도체 1위’ 공약은 단지 반도체 위탁생산인 파운드리 부문에서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AI 분야의 선도기업 중 하나로 떠오른 엔비디아 역시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단숨에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강자로 떠올랐다. 400억달러(47조5000억원)라는 거금을 투자해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인수하면서다. 설립과 안정화에만 최소 수년이 필요한 반도체 제조공장은 단 한 곳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IP와 기술을 손에 넣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과 1~2위를 다투는 인텔 역시 인수 합병에 적극적이다. 앞서 언급한 FPGA 분야에서도 지난 2015년 업계 2위 알테라(Altera)를 176억 달러(당시 기준 18조5000억원)에 인수하며 대번에 이 부문 강자로 올라섰다. 그때의 과감한 투자는 현재 떠오르는 AI 시장에서 인텔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든든한 기반으로 자리매김했다.

AMD는 무리를 해서라도 자일링스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CES 2019 기조연설 중인 AMD CEO 리사 수 박사. / AMD
삼성이 현재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유지 중인 메모리 반도체도 중요한 사업이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 역시 중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비메모리 1위’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왜 인수합병과 그로 인한 반도체 IP 확보에는 소극적일까. 여러 팹리스 기업들이 삼성 파운드리보다 TSMC를 선호하는 것은 단지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라, 삼성에게 자신들의 반도체 디자인 및 설계 노하우가 유출될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눈칫밥을 먹으면서 겨우겨우 생산 물량을 따올 바에야, 인텔이나 엔비디아처럼 인수합병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반도체 IP를 아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직접 생산해 해외 시장에 공급하는게 훨씬 나아보인다. 파운드리 사업은 말이 좋아 ‘위탁 생산’이지, 발주하는 팹리스 설계 기업 입장에서는 일개 하청에 불과하다. 수요가 무궁무진한 만큼 돈벌이는 되고, TSMC처럼 ‘슈퍼 을’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는 ‘반도체 업계 선도기업’이란 타이틀을 달기가 부끄럽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지금 당장은 한 발 앞선 공정 기술과 적층 기술을 바탕으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중국 등 후발 주자에 따라잡힐 수 밖에 없는 분야다. 미국의 제제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현재 한풀 꺾인 상태이지만, 뒤처지는 기술로도 어떻게든 자체 생산 메모리 제품들을 만들며 노하우를 쌓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이대로 가면 거의 모든 반도체 산업에서 밀려버린 일본의 현재 모습이 우리의 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도 시간 문제다.

물며, 기업 규모에서 삼성에 비해 훨씬 처지는 AMD도 300억달러를 들여가며 자일링스 인수에 뛰어든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그만한 능력이 없을까? 하만을 인수했던 것처럼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와 ‘도전’이 있어야만 ‘비메모리 반도체 1위 달성’이라는 공약을 달성하는데 조금이나마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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