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인기몰이 중인 지포스 30시리즈의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적인 공급 부족 추세와, 그로 인해 반복되는 매진 사태로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그래픽카드 브랜드들이 매주 입고되는 물량을 오픈마켓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유통사들이 대기 수요자들을 위해 미리 입고 일자와 판매 시각을 공지하지만 한 번에 판매하는 물량이 고작 20개~30개 수준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최소 수백 명이 넘는 구매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1분여 사이에 모두 동이나 버리기 때문이다. 여러 하드웨어 커뮤니티에도 제품 사용 경험담보다는 구매 실패를 하소연하는 글들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주요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의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 제품들 / 각 제조사
주요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의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 제품들 / 각 제조사
12일 저녁 인터파크에서 판매를 진행한 모 인기 브랜드의 지포스 RTX 3080 제품은 선착순 20개 판매에 구매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서버 오류까지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류로 인해 무려 252명이 결제를 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제조사와 수입유통사가 수습에 나섰다. 13일 공지를 통해 초과 구매자들을 예약 구매자로 전환하고, 입고되는 순서대로 제품을 제공한다는 것.

구매 대기 행렬에 되팔이도 극성, 해외 직구도 상황 마찬가지

252명에 포함된 이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이번에도 구매에 실패한 이들 중에는 "252개의 공급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라며 허탈감을 전했다. 현재 공급 추세를 기준으로 볼 때, 1주일에 20개씩 공급된다고 하더라도 3달 가까이 기다려야 다시 구매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매 경쟁이 치열한 것은 실수요가 그만큼 많은 것도 있지만, 소위 ‘되팔이’로 차익을 노리는 이들까지 너도나도 구매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그래픽카드 수입/유통사들이 미리 공지를 통해 지포스 30시리즈를 판매하면, 어김없이 관련 커뮤니티나 리셀러 사이트에 아직 수령조차 안한 해당 제품의 매물이 몇 개씩 등록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오픈마켓이나 수입/유통사 자체 쇼핑몰 외에 일부 소량의 물량이 PC 조립 전문업체로 공급되고 있지만, 대부분 단품 판매가 아닌 PC 완제품의 세트 형태로만 팔고 있어 그래픽카드만 따로 구매하려는 이들은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해외 직구도 여의치 않다. 지포스 30시리즈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와 그로 인한 폐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해외 시장에서도 동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대기자들은 지포스 30시리즈 구매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수백 대 1 수준에 달하는 경쟁을 뚫고 정가에 지포스 30시리즈를 구매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데다, 정가의 20%나 되는 웃돈을 내고서까지 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소위 ‘버티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게다가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올해 연말까지 지포스 30시리즈 공급 부족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공개됐다. 그만큼 지포스 30시리즈의 구매를 포기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라데온 RX 6000’ 시리즈, ‘지포스 RTX 3070’으로 눈길 돌리나

대안 제품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보인다. 경쟁사인 AMD가 오는 28일 발표할 예정인 ‘라데온 RX 6000’ 시리즈와 그다음 날 엔비디아가 발표하는 지포스 30시리즈의 세 번째 모델 ‘지포스 RTX 3070’이 그 대상이다.

라데온 RX 6000시리즈는 아직 그 실체가 모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상급 제품의 성능이 지포스 RTX 3080에 버금가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지포스 30시리즈에 몰린 수요를 어느 정도 분산하는 효과를 발휘할 전망이다.

지포스 RTX 3070은 앞서 출시한 3090, 3080 모델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가격대가 훨씬 저렴하면서도 전 세대 최상급 제품에 버금가는 성능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중이다. 지포스 30시리즈 전체 라인업에서도 주력 제품군에 속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초기 물량이 3080, 3090보다 넉넉할 것으로 예상되어 구매도 훨씬 쉬울 전망이다.

계속되는 공급 부족에도 불구하고 지포스 30시리즈에 대한 인기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5일부터 AMD의 차세대 CPU인 ‘라이젠 5000 시리즈’가 정식 발매되면서 PC 신규 구매 및 업그레이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이버펑크 2077’,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같은 AAA급 대작 게임들이 연말을 앞두고 잇달아 출시를 앞두고 있어 고사양·고성능 그래픽카드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