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이 세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개발 지원 나선 이유"

입력 2020.10.20 06:00

이홍규 라인 언체인 대표 인터뷰
글로벌 메신저 기업과 다른 행보…"누군가는 총대매야"
메신저·페이·블록체인 3박자로 각국 중앙은행 관심 ‘기대’
아시아 시작으로 세계로 확대…초당 1000건 거래 규모 확보

네이버 일본 자회사 라인이 세계 중앙은행을 상대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개발 지원에 나섰다. 블록체인 사업 주도권을 쥐기 위해 지난해부터 경쟁 구도를 그려온 페이스북과 텔레그램, 카카오, 라인 등 글로벌 메신저 기업 중 최초 시도다.

IT조선은 라인에서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계열사 언체인을 이끄는 이홍규 대표와 만나 CBDC 사업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표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계좌를 만들어 CBDC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며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고 자신했다.

이홍규 라인 언체인 대표가 IT조선과 인터뷰에서 세계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개발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인
선례 없는 CBDC 발행, 중앙은행도 고민…"라인이 돕겠다"

라인과 같은 글로벌 메신저 기업이 CBDC 개발 지원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페이스북이 자체 가상자산 리브라를 소개했지만 세계 각국은 페이스북이 금융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리브라를 견제했다.

그러면서도 세계 각국은 분산원장기술 기반 CBDC 발행 논의에 들어갔다. 리브라 개념의 등장으로 기존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자국 통화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CBDC 개발 논의에 나서는 등 대책을 강구하게 된 배경이다.

이홍규 대표는 "규제가 없는 블록체인 산업에서 규제당국과 협업할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하던 찰나 CBDC는 규제 당국의 화두가 됐다"며 "다만 이 분야는 선례가 없어 누군가는 개척해야 하는 만큼 라인이 그 역할을 하는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라인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이 지닌 확장성과 안정성 등 장점은 살리면서 각국 중앙은행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형식의 ‘커스터마이징 CBDC’ 개발 지원한다는 목표다. 각국 중앙은행 입맛에 맞는 CBDC를 개발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 소액결제 용도의 CBDC 개발에 주안점을 뒀다. 이 대표는 "CBDC가 처음 논의되던 지난해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은 기관 또는 정부 사이에서 활용되는 거액결제용 CBDC에 관심을 가졌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경제가 떠오르자 현금을 대체하기 위한 민간 소액결제 CBDC로 눈길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관련 업계는 라인이 블록체인 기반 소액결제 분야에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메신저뿐 아니라 페이, 뱅크 사업을 영위한 데 이어 블록체인(가상자산 지갑·거래소·개발 플랫폼 등)까지 얹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과 블록체인을 융합해 소액결제 CBDC를 개발하고 사용처를 확대해야 하는 중앙은행들에게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 대표는 "라인은 메신저와 페이, 뱅크 사업을 영위하면서 금융 산업·규제에 대한 이해도를 갖췄다"며 "여기에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토큰 발행과 플랫폼 운영 등 블록체인 사업 경험까지 보유했기 때문에 세계 중앙은행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일 국가서 발생하는 거래량 감당 가능…향후 세계로 확대"

많은 국가가 기술 혁신을 위해 CBDC에 분산원장기술을 적용하고 싶어하지만 막상 기술 성숙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홍규 대표는 "단일 국가에서 발생하는 거래 처리량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태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1년에 발생하는 신용카드 거래 건수는 약 200억건이다. 같은 시기 현금 거래는 110억건 쯤 거래된다. 우리나라 결제 규모만 따질때 1초에 1000~2000여건의 거래만 처리해도 충분한 수치라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그는 향후 거래 처리량을 2초에 1만건 수준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 신용카드사가 1초에 처리할 수 있는 거래 건수는 약 4만건 정도다"라며 "단일 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확장해야한다고 가정할 때 거래 처리량을 최대 2초 이내 1만건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신용카드 결제 시간도 최대 3초를 넘기지 않기 때문에 CBDC 결제도 이러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면 불편함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시아 중앙은행 ‘힐끔’…논의 한창

이 대표에 따르면 라인은 현재 아시아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라인 플랫폼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논의 국가에 대해 이 대표는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현금에서 디지털화폐로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는 국가들이고, 소액결제 CBDC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이홍규 라인 언체인 대표가 IT조선과 인터뷰에서 세계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개발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인
중앙은행들과 논의에서 이 대표가 느낀 점을 묻자 그는 "CBDC에 대해 아무리 꼼꼼히 연구해도 소액결제 CBDC가 발행된 선례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충이 컸다"며 "방향성이 정해지더라도 국가 특성에 맞는 CBDC 개발 지원 플랫폼이 없다는 점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인은 여러 국가와 논의를 거쳐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인 선례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후발주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대표는 ▲라인이 안정성과 확장성, 거래 속도 측면에서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력을 끌어올렸다는 점 ▲메신저와 페이, 블록체인 사업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라인의 이같은 경험과 기술력을 높이 사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신감을 보였다. 후발주자가 따라잡기에는 경험과 기술력 측면에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9년 하반기 리브라를 제시하면서 세계를 흔든 페이스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페이스북은 특정 국가를 위해 CBDC 플랫폼을 커스터마이징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국가 특성에 맞춘 CBDC를 발행해야 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라인 CBDC 플랫폼이 페이스북보다 더 유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홍규 대표는 이번 CBDC 플랫폼 제공 사업을 통해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삼겠다는 포부다. 그는 "라인 브랜드를 가지고 당장 주력할 수 있는 곳은 아시아다"라며 "소액결제 CBDC에 대한 수요도 아시아가 가장 큰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라인은 아시아뿐 아니라 그 밖의 국가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세계 어느 국가의 중앙은행이 됐던, 실질 업무를 시작하면 관련 수요나 필요한 과정을 세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등을 태핑할 예정이다.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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