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잘나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나마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잘 나갈 때 잘해라’라는 말은 자신이 여유가 있을 때 주변을 돌아보며 점수를 따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세계 ICT 시장에서 잘나가는 5대 기업을 가리켜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의 알파벳 첫 글자)이라고 한다. 현재 잘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에도 승승장구할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상상초월 수준이다. 한국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과 비교해도 한참을 앞서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일부는 업계 내 위상과 달리 ‘혹평’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넷플릭스와 구글은 한국 국회의 가을행사인 ‘국정감사’의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고, 애플은 불공정 거래 기업이라는 오명을 썼다.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별만 개선의 의지가 없다. 한국은 물론 자국인 미국에서도 다양한 충돌을 빚는다.

미국 정부는 구글의 불공정 행위를 재판에서 묻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제조사들에 구글이 선정한 특정 앱 선탑재 강요 ▲구글 검색과 구글 플레이 스토어 선탑재 ▲다른 모바일 OS 제공사들 간 협력 금지 ▲모바일 앱 개발사에 높은 수수료 부과 ▲인앱결제 사용 요구 ▲사용자가 경쟁 앱스토어 설치 시 자동 업데이트 같은 기본 기능 제공 차단 등을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게임에 이어 모든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의 인앱결재 의무화와 30%의 수수료 책정 등 조치로 업계 반발을 불러왔다. 구글플레이의 국내 앱 마켓 시장 점유율은 71%에 달하며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가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글의 새로운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기 어렵다. 잘나가는 구글과 싸우기 버거운 처지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임재현 구글코리아 전무 모습 /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최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임재현 구글코리아 전무 모습 / 국회의사중계시스템
22일 펼쳐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도 관련 문제가 다뤄졌지만, 구글 대표로 참여한 임재현 전무는 "한국 정부가 구글의 인앱결제 정책을 법으로 막는다면 구글은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도 이런 법안이 통과된 적 없으며,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이용자와 개발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저희의 비즈니스모델(BM)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전향적 태도를 취하겠다는 의지는 없는 셈이다.

넷플릭스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만 33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통신망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관련 비용 지불에 인색하다. 법으로 정하면 따르겠다는 극단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 급기야 ‘넷플릭스법’까지 나왔다.

넷플릭스 측은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드라마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 관련 콘텐츠를 유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투자액만 놓고 넷플릭스의 기여를 따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일부 긍정적 효과를 준 것은 맞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서비스한 인기 콘텐츠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만든 것이다"며 "수익 중 상당 부분을 한국 콘텐츠가 담당한 만큼, 투자액 기준으로 기업의 기여도를 평가하기는 어려운 셈이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애플도 불공정 약관 등 문제로 한국에서 자주 충돌을 빚는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애플 마니아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지만, 기업간 거래 시장에서는 ‘갑질 기업’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공정위도 애플의 불공정 약관 등을 면밀히 살피지만,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애플은 아이폰12 1차 출시국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광고비 전가나 마케팅비 책정 등 문제는 여전하다"며 "제품 판매나 마케팅을 위한 자료 배포도 애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옛말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인격이나 지식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기업은 한국이나 동양권 가치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기업간 관계의 시작이 상호존중이라는 것은 글로벌 표준이다. 지금 잘나간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난공불락이었던 세계 1위 휴대폰 회사 노키아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제2·제3의 몰락 기업 리스트에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지 않으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 당장의 이득을 위해 상대 기업에 갑질을 하거나 국가 내에서 충돌이 빚는 대신, 합리적 수준의 해결법을 제시하는 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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