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속에 약 49만명의 학생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참여했다. 이들의 로망 중 하나는 새로운 스마트폰 구매다. 특히 사회생활을 앞두고 다양한 플래그십 제품에 눈길을 돌린다.
최근 수능생을 둔 주변 지인 여럿의 얘기를 들어보니, 시험 후 자녀와 함께 휴대폰 매장을 방문해 애플이 만든 아이폰을 사주기로 했다고 한다. 전체 수험생을 대변할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 젊은 층의 아이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최근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12-2020 스마트폰 사용률’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대와 30대 여성의 아이폰 사용 비중은 각각 58%, 44%에 달했다.
국내서 승승장구하는 애플은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호소하는 일부 소비자에게 이해하기 힘든 응대를 한다. 애플이 만든 제품에 애정을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일부 스포츠 구단 선수들이 팬들과의 소통을 무시하는 것처럼, 애플 역시 마니아 층을 너무 막대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애플의 사례를 보며, 1992년 개봉한 박종원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다. 영화 속 ‘엄석대(홍경인)’ 급장은 일개 초등학생이지만, 거의 선생님에 준하는 권한을 지닌 인물이었다. 모든 학생과 선생의 절대적인 맹종을 받았다. 이 학교에 전학을 온 한병태(고정일)는 처음에는 엄석대에 반발했지만, 결국 엄석대 왕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의 충복이 되야만 했다. 젊은 김정원(최민식) 선생의 부임 후 엄석대 왕국은 해체되지만, 절대적 맹종은 부당함 조차 정당한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애플을 엄석대에 빗대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애플 생태계에 익숙해진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 제품을 한 번 쓰면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애플이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편리함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맥북 업데이트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애플 불매운동’이 펼쳐질 만도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애플이 최근 출시한 아이폰12 시리즈의 경우 한 달 만에 50만대 이상 판매되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정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문제의 중심에 선 애플 스스로가 고객 서비스 관련 문제에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지금이야 마니아 층이 애플 제품을 꾸준히 구입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똑똑한 소비자는 언제든 애플의 손을 놓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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