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혁신의 리스크를 수용하지 못하는 나라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0.12.22 06:00

    전세계가 코로나19 백신 확보 전쟁 중이다. 30여개 나라에서는 금년 중에 백신을 맞기 시작한다고 한다.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사이에 벌어질 백신 디바이드를 우려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나라에서도 누가 먼저 맞는지를 놓고 계층 간에 공공성과 공정성 갈등이 생기고 있다.

    백신 확보에 실패했다고 하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인구수의 몇 배를 확보한 선진국들에 비해 양도 적을 뿐 아니라 백신 접종의 구체적인 시기·일정 등을 공개도 하지 못하고 있다. 4400만명 분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는데 계약을 했다는 1000만명 분은 아직 3상 실험의 지연으로 FDA 승인도 못 받은 회사로 일정이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백신 개발 완료 이전에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구매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협상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해명이 되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의 예고가 있었음에도 3차 대유행 같은 상황을 상정하지 못 했다. 소위 K-방역의 성공(?)에 취해 백신의 확보의 긴박성을 인식하지 못 한 것이다. 당에서는 심지어 백신 먼저 맞는 나라들을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세계 여행을 다닐 때 풍토병 예방주사처럼 증명서를 들고 다녀야 할 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안일한 소리이다.

    현재까지 계약을 완료했다고 하는 회사는 FDA 승인도 못 받았는데 국내 기업에 위탁 생산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또 한 제약회사 회장은 조만간 치료제 개발 완료를 자신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혹시 산업적인 고려가 앞선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뭐니뭐니해도 이 시점에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에 대해 잘 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리스크를 수용하는 제도와 문화를 갖지 못했다. 백신 계약을 협상을 하면서도 가격, 일정, 백신의 유효성, 유통의 용이성, 부작용에 대한 배상, 비밀 보장 등 온갖 조건들에 대해 꼼꼼하게 따지며 밀고 당겨 완벽한 계약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실무자들은 계약을 잘못했을 때 돌아올 책임을 항상 머리에 떠올리며 일했을 것이다. 실무자들이야 그렇다지만 방역 책임자, 부처의 책임자 심지어 청와대 까지도 이런 상황에서 시기의 긴박성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무능만을 탓할 수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고 커 왔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더구나 감사를 비롯한 많은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외국 기업을 대표해 정부기관, 기업과 수도 없이 많은 계약을 협상하며 느꼈던 답답함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 가히 상상이 간다.

    이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힘들다. 혁신적인 무엇을 만들어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만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인색하기 때문이다. 혁신은 창업을 권장하고 투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관 할 것 없이 사회의 리스크 수용성(risk taking)이 높아야 한다. 모든 혁신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1980년에 IBM이 PC의 OS로 20대 청년들이 만든 도스(DOS)를 택한 것이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4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정이 이루어 진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출현으로 1980년대는 새로운 아키텍쳐로 구현된 미니-마이크로 컴퓨터 천국이던 시대였다. 그 당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제품이 아니라 아키텍쳐와 약속(commitment) 만으로도 첫 번째 고객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고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 번째 고객이 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이점(advantage)을 보고 과감히 리스크를 수용한 것이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 제품, 솔루션을 제시해도 선뜻 수용하지 않는다. 내가 평생 들어 온 말 중에 "좋기는 좋은데, ~~~" 가 있다. 좋다고 생각되면 여러 이슈들을 극복하며 받아 들여야 하는데, 여러 이유를 들며 받아 들이지 못한다.

    IT 분야가 가장 혁신적인 분야라고 여길 듯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오히려 보수적이거나 반 혁신적이었다. 어쩌면 권한이 안 주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직원 250인 이상 기업의 클라우드 도입률이 33.6%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핀란드 88.6%, 일본 70.3% 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다. 클라우드는 AI, 빅데이타 등에 필수적인 환경으로 디지털전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이다.

    클라우드 이전에도 유닉스를 받아들이는데 10년, 다시 리눅스를 받아 들이는데 10년 이상씩 걸려 혁신적인 IT 환경을 갖추는데 항상 뒤쳐져 왔다.

    백신 확보가 늦어진 것도 결국은 우리 사회가 리스크를 수용하는 문화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통상적인 조건들만 따지고 있은 것이다. 확보를 우선 해놓고 접종을 신중하게 하는 프로세스를 따랐어야 했다. 앞뒤도 안 맞는 이유를 대가며 두루뭉실 피해 갈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리스크를 수용하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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