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벽두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코로나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지구 환경에 다시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지구 온난화가 변종 바이러스의 숙주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투자업계와 산업계는 돈 냄새를 맡고 이런 흐름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ESG가 전 세계 주요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그런 흐름을 반영한다. ESG는 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 를 뜻한다.

2020년 독서목록 중에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팀 쿡' '트레일블레이저' 는 ESG 트렌드와 밀접하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븐 쉬나드의 경영 철학을 담고 있다. 등산, 카약, 스키를 즐겼던 쉬나드의 창업 동기 자체가 환경 보존이었다.

그는 암벽등반을 할 때 바위를 파손하지 않는 등반장비를 고안해 등산 장비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쉬나는 그 성공을 발판으로 아웃도어 의류에 진출해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만드는 공정을 도입하는 등 친환경 기업 브랜드를 확실하게 키웠다.

특히 한 번 판매한 제품을 계속 수선하여 입을 수 있도록 만든 파타고니아의 마케팅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파타고니아를 잘 모르는 소비자라도 이 회사 제품을 보면 ‘오래 믿고 쓸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쉬나드는 고속성장기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컨설팅을 받았다가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런 아픔을 견딘 뒤에
환경 최우선하는 기업경영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만이 파타고니아 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7세대 앞을 내다보는 인디언 이로쿼이(Iroquois) 족의 지혜를 본받아 주요 의사결정에 7세대 후의 상황과 관점까지 반영할 정도로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경영을 실행하고 있다.

쉬나드의 또 다른 경영 원칙은 직원의 행복이다. 책 제목은 다음 쉬나드의 경영 철학에서 따온 것이다. "파도가 칠 때는 일을 때려치우고, 언제든지 서평을 즐겨라. 함박눈이 내리면 스키를 타고,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일하라."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는 세일즈포스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베니오프의 책이다. 대체로 창업자의 책은 창업 스토리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여정을 담는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베니오프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떠맡을 때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쌓인 윤리적 부채 의식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책무를 능동적으로 다 하는 것이야말로 더 번창하는 성공 방정식이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세일즈포스의 경영 원칙 중에서 1: 1: 1 원칙은 널리 알려져 있다.

회사 자본의 1%, 제품의 1%, 업무시간의 1%를 사회봉사에 투입하는 CSR이다. 한 예로 세일즈포스는 샌프란시스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300여 억원을 기부해서 화제를 모았었다. 베니오프는 비판적 시선을 의식해 마지못해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고, 공세적으로 화끈하게 사회적 책임을 떠맡으려 하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 SK그룹이 ESG에 가장 적극적이며, 효성, 신한 등 여러 기업들이 잇따라 ESG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직접 사회적 기업이라는 가치 지향적 목표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프로그램에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조용한 천재 '팀 쿡 '은 나의 애플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꾸었다. 나에게 애플은 여전히 스티브 잡스 그 자체였다. 이 책은 팀 쿡이 잡스 사후 애플을 맡아 이룬 여러가­지 업적을 기술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경영적 성과나 기술 혁신보다 기업문화의 조용한 변화였다.

미국 남부의 보수적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남성으로서 팀 쿡은 성소수자였다. 그가 평생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두려움은 주변의 차별 시선이나 암묵적 억압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 어둠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편견과 차별과 맞서기 시작했다. 쿡은 한발 더 나아가 애플의 막강한 혁신 영향력을 차별을 해소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팀 쿡 책을 읽으면서 애플이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기후변화대응, 소수자 차별 철폐에 적극이면서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점을 알았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과 서비스 혁신에만 집중했으나, 그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공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런 가치를 실제 기업활동에 구현하는 것은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사회적 책무를 기업 성장과 번영에 핵심 수단으로 삼자는 주장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혁신의 기폭제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일즈포스와 애플은 확고부동한 글로벌 1등 기업으로서 천문학적 숫자의 초과 이익을 매년 얻는 기업이다. 매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대다수 중소 규모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DG(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또는 ESG 테마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더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촌 어느 구석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각성을 일으켰다. 또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 쳐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모두가 절감했다.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야만 나, 나의 가족, 나의 마을, 나의 도시, 나의 국가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또 글로벌 연대를 하지 않고 내 국가만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마지못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사회적 악습은 사람의 습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민족성이나 토착문화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냥 습관이며 사회적 DNA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습관은 개인의 습관을 고치듯이 보상 신호만 살짝 바꾸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을 이용해 살짝 개입하는 넛지 방식으로 사회적 악습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환경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과학기술과 넛지 전략을 결합시키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과학기술과 넛지를 활용한 지구촌 공통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며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다. 책을 읽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으면 넷플릭스에서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s Brain)'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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