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언택트 산업이 단번에 시장 메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변화의 흐름은 올해도 이어진다. 백신이 등장했지만 팬데믹이 몰고 온 변화는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변화의 흐름을 잘 타면 기업에는 도약의 기회가 된다. IT조선은 올 한 해 우리 산업계 변화를 이끌 10대 기술을 찾아, 매주 월·목 2회씩 5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 반도체를 향한 업계와 소비자의 관심이 뜨겁다. 엔비디아와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ICT 공룡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AI 반도체를 올해 핵심 키워드로 손꼽는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 역시 AI 반도체 사업에 속속 뛰어든다.

정부는 최근 AI 반도체 사업을 집중 육성해 2030년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인력 양성과 예산 지원도 약속했다. 국내 산업이 AI 반도체 분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메모리 기술을 결합한 AI 반도체 분야를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SK텔레콤이 선보인 AI 반도체 사피온 X220 / SK텔레콤
SK텔레콤이 선보인 AI 반도체 사피온 X220 / SK텔레콤
반도체·ICT 공룡기업부터 삼성·SKT까지…"AI 반도체 향한다"

13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전 산업에 AI 기술이 빠르게 자리를 잡으며 AI 반도체 산업 시장도 성장세다. AI 반도체는 학습, 추론 등의 AI 기능을 구현하고자 대규모 연산을 빠르게 실행하는 시스템반도체다. 자율주행차와 지능형 로봇, 스마트폰, 가전, 드론 분야 등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보니 주목을 받고 있다.

AI 반도체 사업 전망이 밝다 보니 글로벌 기업이 속속 관심을 보인다. 시스템반도체 전체 시장의 60%쯤을 차지하는 인텔과 엔비디아, AMD 등 반도체 기업은 AI 반도체 사업 확대를 노린다. 일 예로 인텔은 2019년 12월 이스라엘의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하바나 랩스를 20억달러(2조1940억원)에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MS와 구글 등 미 실리콘밸리 기업 역시 클라우드 사업 확장을 위해 AI 반도체에 관심을 보인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이터센터의 연산 처리 속도를 높이려면 AI 반도체 도입이 필수이다. MS는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에서 AI 개발 환경이 구현되도록 AI 반도체를 도입했다. 구글은 더 나아가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기업 역시 AI 반도체 경쟁력 키우기에 열심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계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데,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규모가 크고 변동성이 낮다 보니 먹거리 확대를 위한 체질 개선이 필수다. 시스템반도체 핵심인 AI 반도체 사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특히 인간의 뇌 신경을 모방한 차세대 AI 반도체인 신경망처리장치(NPU) 확대를 바라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4일 올해 첫 경영 행보로 시스템반도체 사업장을 찾으며 해당 사업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2020년 11월 AI 반도체 ‘사피온 X220’을 공개했다. 자체 설계한 데이터센터용 NPU다. SK텔레콤은 기존에 데이터센터에서 GPU를 사용해 왔지만 비싼 부품 가격과 높은 전력 소비량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NPU를 개발함으로써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연계 사업까지 바라보게 됐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시스템반도체산업 현황 및 전망’ 보고서를 보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성장 동력은 AI 반도체다. 보고서는 AI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8년 70억달러(7조6755억원)에서 2030년 1179달러(129조2773억원)로 연평균 26.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부터는 NPU 성장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과기정통부의 AI 반도체 전체사업 구조도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의 AI 반도체 전체사업 구조도 / 과기정통부
정부, 2030년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 목표
성공 가능성 불확실하다는 지적에는 "시장 초기 가능성 본다"

AI반도체 활성화에는 기업 뿐 아니라 정부도 참여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0월 AI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AI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한국의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혁신 기업 20곳을 키우고, 고급 인재 3000명 양성에 나선다.

정부는 2020년부터 2029년까지 10년간 총 1조96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과기정통부가 4880억원을, 산업부가 5216억원을 투입하는 식이다.

과기정통부는 12일 이같은 계획을 구체화해 올해 AI 반도체 사업에 1253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예산 대부분(86.5%)인 1084억원을 핵심 기술 개발에 투입한다.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자 대학 내 AI·시스템반도체 연구인력 양성 전문센터 3개소도 추가로 만든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사업 확대 의지와 별개로 국내 AI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2% 쯤으로 미미하다. 이마저도 대기업을 제외하면 1% 미만으로 비중이 확 줄어든다. 기술 수준 역시 미국 대비 80.8% 수준이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NPU 분야를 키우겠다고 하지만 삼성전자도 해당 사업을 헤매는 상황에서 나머지 팹리스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단순히 육성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 역시 "AI 반도체가 중요한 기술이지만 누가 할 수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다"며 "현재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높은 목표를 내세우며 고성능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시행착오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AI 반도체 산업이 초기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엔비디아와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의 주요 강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새로운 기업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한 관계자는 "시장 초기 단계에 SK텔레콤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여러 스타트업 벤처가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활성화하고 있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번에 (과기정통부가) 연구개발뿐 아니라 기업 지원 사업도 신규로 포함해 진행하는 만큼 AI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AI 반도체 육성 과정에서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능형 메모리 반도체(PIM) 사업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PIM은 저장(메모리)과 연산(프로세서) 등의 기능을 통합한 신개념 AI 반도체 기술이다.

이혁재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AI나 빅데이터 기술은 데이터를 많이 필요로 하기에 메모리가 중요하다"며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만큼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PIM을 만들어낸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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