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여점. 미술품 애호가로 알려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후, 유족이 민간 단체에 가치 분석을 의뢰한 미술품 수다. 이는 고인의 재산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미술 업계에서 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진다. 개인이 가진 유명 미술품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와 함께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한민국헌법 제38조(시행 1988년 2월 25일, 헌법 제10호 1987년 10월 29일 전부개정)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조세 납부 방법은 현금 또는 ‘증권에 의한 세입납부에 관한 법률(국세징수법 시행령 제18조, 시행 2021년 1월 5일, 대통령령 제31380호, 2021년 1월 5일, 타법개정)’에 따른 증권이 있다.

단,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현금 이외의 재산으로 조세를 납부할 수 있다. 이를 ‘물납’이라 한다.

물납제도는 현금으로 조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납세자에게 편의를 주는 동시에, 조세 당국이 안정적으로 조세를 확보하기 위해 실시된다. 과거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에도 물납제도가 확대 적용된 바 있다. 하지만, 금전납부자와의 형평성 유지 및 세금회피 수단으로의 악용을 막기 위해 현재는 상속세, 재산세의 경우로 축소 적용되고 있다.

물납허용자산 범위 또한 축소됐다. 현행법상 부동산, 유가증권에 한해서 물납이 조건적으로 허용된다. 미술품은 물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미술품을 물납자산으로 허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 뿐만 아니라 생존해 있는 작가의 작품도 물납대상에 포함한다.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센터의 국립현대미술관 등은 대물변제를 통해 상당수의 주요 작품들을 확보하고 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등도 ‘국민에게 문화향유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미술품 물납제도를 허용한다.

한국에서 ‘상속, 증여세 미술품 물납제’에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실, 10년 전에도 한차례 논의됐다가 유야무야된 사안이다. 그러다 최근 일어난 두가지 사건이 미술품 물납제를 다시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다.

2020년 재단 운영 중 재정 압박을 받은 간송미술관 유족들이 보물급 불상 2점을 경매에 부친 일이 있었다. 이어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 미술품 물납제도가 포함됐다.

한국에 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할 경우 핵심은 ‘미술품 가치 분석’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미술품 가치를 분석할 경험도, 체계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미술품 가치를 분석할 때 객관성·신뢰성·공정성·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금전납부자와의 형평성과 조세 행정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미술품 가치 분석 문제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공정성을 확보한 협의체 구성’이다. 실제로 협의체 역할을 이미 존재하는 ‘미술은행’, ‘미술품감정연구센터’, ‘문화재수증심의위원회’ 중 하나의 기관에 위탁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안의 문제는 ‘어느 하나의 조직이 미술품 가치분석을 전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어느 조직에도 종속되지 않은, 즉 ‘조직을 초월한 투명한 협의체’를 만들어야 미술품 가치 분석 체계에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투명한 협의체를 운영할 때 꼭 고려할 사항은 두가지다. 첫째, 특정 위원 한명이 너무 자주 임용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미술품 가치 분석을 의뢰하는 주체가 투명한 협의체의 구성원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두가지 원칙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 미술품 가치 분석의 신의성실 의문론을 어느정도 해소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세금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우선할 것은 형평성과 신뢰성이다. 미술품 가치 분석의 신의성실 확보 역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원칙 중 하나이다.

한국 미술계가 지금처럼 폐쇄적이라면 미술품 가치 분석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인이나 특정 조직이 그저 권위와 경험을 내세워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고, 나아가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시장의 검증을 받는 것은 곧 미술품 가치 분석에 신뢰성, 객관성을 가져다줄 길이다.

이번에도 10년 전처럼, 미술품 물납제도의 발전안이나 결과를 무엇 하나 도출하지 못한 채로 논의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 외부필자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위험관리·ESG금융·대체투자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 글로벌 ESG, 한국탄소금융협회 ESG금융팀장을 포함해 현업 및 정책에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한다.

박지혜는 아트파이낸스그룹(Art Finance Group) 대표다. 우베멘토 Art Finance 팀장 역임 후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미술품 담보대출 보증 지원 사업 계획[안] 연구> 참여 및 아트펀드포럼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시장과 경매회사(2020년 출간 예정)』 (공동집필)가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