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북이 비대면 교육 수요 급증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크롬북은 하드디스크 없이 웹브라우저로 주요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해 쓸 수 있는 서브 노트북이다. 문서 작성과 사진 편집 등 기능을 수행하는 가벼운 제품이다.

크롬북은 일반 노트북에 비해 저사양 제품이지만,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온라인 교육 수요 덕에 시장에서 각광 받는다.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HP와 에이서 등 외국계 노트북 제조사다. 이들은 신제품을 선보이며 수요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국산 제품은 안방에서 취약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행보를 보면 이해가 간다. 삼성전자는 일반 소매 시장에서 크롬북을 판매하지 않으며, LG전자는 한박자 느리게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크롬북 전문 스타트업이 있지만, 외산 대기업과 경쟁하는 데 힘이 부친다. 잘못하면 외산 기업에 한국 크롬북 시장을 다 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갤럭시 크롬북2(왼쪽 두 이미지)와 에이서 크롬북 스핀 514(오른쪽 두 이미지) 제품 모습 / 각 사
삼성전자 갤럭시 크롬북2(왼쪽 두 이미지)와 에이서 크롬북 스핀 514(오른쪽 두 이미지) 제품 모습 / 각 사
15일 PC 업계에 따르면, HP는 최근 조달시장에 등록을 마치고 크롬북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교사들을 상대로 세미나도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에이서는 2020년 크롬북을 앞세워 조달시장에 진출했다. 전국 38개 초·중·고에 6000대 이상의 크롬북을 납품했다.

HP와 에이서 등 외국계 기업의 크롬북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국내 기업으로는 크롬북 스타트업인 포인투랩이 거의 유일한 주자다. 삼성전자는 조달시장에만 크롬북을 공급하고, LG전자는 크롬북의 경쟁 제품인 웨일북을 이제 막 개발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대표 모델로는 13.3인치 터치스크린(QLED)을 적용한 ‘갤럭시 크롬북2’가 있지만, 소매 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갤럭시 크롬북2는 1분기 중 미국 시장에서 550달러(61만원) 가격에 판매될 예정이다"며 "국내 출시 계획은 미정이며, 일반 시장에 크롬북을 출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LG전자는 네이버와 손잡고 ‘웨일북’을 개발 중이다. 웨일북은 네이버의 웹브라우저 기반 교육 플랫폼 웨일 스페이스(Whale Space) 소프트웨어에 최적화한 교육용 노트북이다. 네이버 웨일 OS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LG전자 관계자는 "네이버와 웨일북 개발을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구체적인 출시일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PC 업계에서는 국내 크롬북 시장을 외산이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이서는 1월 열린 CES 2021을 통해 AMD 라이젠 3000C 시리즈 모바일 프로세서와 라데온 그래픽을 탑재한 크롬북 신작 ‘스핀 514’를 선보였다. 한국 시장에서 에이서 크롬북 사용률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전국 서비스망을 구축해 운영한다. 구글 포 에듀케이션(Google for Education)과 공동으로 웨비나를 열고 온라인 기반 양방향 학습 방안도 제시한다.

조달 시장 등록을 마친 HP도 적극적으로 한국 크롬북 시장 공략을 노력한다. 소병홍 HP코리아 상무는 "구글코리아와 협업해 교육 시장에 적극적으로 크롬북을 제안하고 있다"며 "크롬북이 왜 교육 시장에 적합한지를 주제로 각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2021년은 크롬북 출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글로벌 크롬북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 1120만대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디지타임스 리서치센터도 올해 글로벌 크롬북 출하량이 전년 대비 30%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롬북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하지만, 한국 시장은 외산 제품 천하로 전락할 수 있다. 국내 유일한 크롬북 스타트업인 포인투랩이 2016년부터 시장에 대응 중이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어정선 포인투랩 대표는 "한국 크롬북 시장은 HP와 에이서 등 대기업이 버티고 있다"며 "포인투랩은 교사 연수를 확대하는 등 찾아가는 학교 현장 지원 강화를 통한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 수요에 대응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