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가 1월 출범 이후 대(對)중국 강경 기조를 이어간다. 중국의 첨단 기술·IT 굴기에 제동을 걸기 위한 목적이다. 직간접적 영향권에 들어온 우리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IT 연관 산업은 위기이자 기회를 맞았다. 우리 기업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 불안요소가 있지만, 미 정부의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부합할 경우 경영 환경에 날개를 다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IT조선은 [바이든 시대 韓 IT] 시리즈 연재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춘 산업별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바이든, 2조달러 투입 ‘그린뉴딜’로 글로벌 IT에 파급력 행사
韓 기업,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 압박에 놓여

출범 2개월을 맞은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IT산업 지형을 뒤흔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핵심 정책으로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 확대에 나섰다. 2025년까지 2조달러(2260조원)을 들여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그린 뉴딜’이 중심에 있다. 이같은 친환경 기조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등 글로벌 IT 산업에도 파급력을 행사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펼치는 정교한 대중 공세도 주목할 만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중국에 마구잡이 관세를 부과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국과 협력을 중심으로 한 치밀한 대중 압박 전선을 구축하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조 바이든 페이스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조 바이든 페이스북
바이든 대통령이 2월 24일(현지시각) 서명한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이 대표적인 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전기차(EV) 등에 사용하는 고용량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 광물 등 중점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이내에 재검토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주요 품목 만큼은 중국 의존에서 탈피해 동맹국이나 우호국들과 제휴해 공급 받는다. 중국을 상대로 한 총성 없는 반도체·전기차·배터리 패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1일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AI에서 중국에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반도체 제조를 재건해야 한다"며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 위해 350억달러(40조원)를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술 보호를 위해 동맹과 함께 첨단반도체 장비의 수출 통제와 외국인 투자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하지만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큰그림이 현실화 하면 이 전략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은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더 큰 압박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확산 정책을 시행하며 ‘바이 아메리칸’을 선언한 만큼 현대차·기아의 미국 투자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유럽과 중국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전기차 시장의 지형 변화도 예상된다. 미 시장 내 한국기업의 비중을 높일 수 있는 반사이익 기대는 기회 요인이지만, 중국산 부품 수준의 품질·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위기 요인이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에 따르면 관용차로 구매되는 차량은 모두 부품 현지화 비중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이 기준을 만족하는 회사는 테슬라 뿐이며 GM이나 포드 등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현대차·기아의 최대 전기차 판매 지역은 한국과 유럽이고, 해외 생산설비는 유럽과 중국에 주로 위치했다. 미국 시장 확대에 부응하려면 연내 미국에서 차량을 생산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K배터리는 미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으로 기회를 잡았다. 전기차 배터리는 미국의 취약 분야 중 하나다. 미국은 테슬라, GM 등 전기차 완성차 기술에서 앞섰지만, 핵심 부품인 배터리 조달은 해외 기업에 의존한다. 이 배터리는 한국·중국·일본 등에 본사를 둔 기업이 납품한다.

미국이 중국 배터리 수입을 제한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세계 1위인 중국 CATL의 미국 진출은 사실상 원천봉쇄될 전망이다.

미국의 현지 투자 요구에 K배터리도 충실히 따르는 분위기다. GM과 합작 법인을 구성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다. 5조원을 들여 2곳 이상에 생산 공장을 짓는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에 1~2 공장을 구축 중이다. 삼성SDI도 미국 내 배터리셀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관계자는 "국내기업의 미국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정부·기업의 맞춤형 전략이 시급하다"며 "정부는 친환경 정책 및 이해관계 조율 등 장기적 안목으로 대응하는 한·미 산업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기업은 미 시장 공략과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 고도화를 위한 글로벌 밸류체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