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중대한 변곡점이 생겼다. 하이디스가 중국으로 매각됐다. 하이디스는 하이닉스 LCD 사업부의 전신이다. 중국 기업 BOE가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LCD 사업을 접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가혹했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산 저가 LCD 공세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1분기부터 6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이며 LCD 사업을 축소하고 OLED로 전환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올해를 끝으로 LCD 사업에서 철수한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이제 OLED 차례인가’라는 말이 나온다. 가뜩이나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OLED 추격에 기름을 붓는 소식이 전해졌다. 매그나칩 반도체가 중국에 매각됐다는 소식 영향이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인 매그나칩 반도체는 TV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OLED용 구동칩을 생산하는 국내 중견기업이다. 최근 매그나칩 반도체는 중국계 사모펀드인 와이즈로드캐피털이 제시한 공개매수 제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매각 거래 규모는 14억달러(1조6000억원)다. OLED 기술까지 중국의 추격을 허용할 위기에 놓였다.

LCD가 준 뼈아픈 교훈을 새길 때다. LCD가 중국으로 넘어갈 당시, 이름도 모르는 중국 기업이 단번에 쫓아오기 어려운 기술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LCD 점유율 글로벌 1위인 BOE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업계에서는 매그나칩의 OLED용 구동칩 기술이 절대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매그나칩이 보유한 기술에 중국의 자본이 더해지면, LCD 추격을 허용한 것과 같은 상황이 OLED에서도 반복됨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매그나칩 매각 건에 관해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와 '산업기술보호지침’을 개정해 반도체와 자동차 등 12개 분야 71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산업부는 30일 매그나칩 측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자료를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그나칩이 보유한 OLED용 구동칩이 국가핵심기술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정부의 판단은 ‘LCD 데자뷰’를 막을 실낱같은 희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성공을 자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요 확대로 OLED 수요가 크게 늘며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OLED 반등 성공을 자축하기 보다 LCD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OLED로 웃고 있는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을 BOE, CSOT 등 중국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이 다시 정조준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