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 거주 중인 70대인 A씨는 금융 상품 가입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복잡한 절차에 포기했다. 가까운 지점을 검색해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스마트폰을 누르다가 돈이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 서울에서 자영업을 시작한 60대 B씨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말에 속아 악성코드가 담긴 URL을 클릭했다. 이후 원격조종앱이 B씨 스마트폰에 설치됐고, 사기범은 B씨 모바일 뱅킹앱에 접속해 자산을 모두 털어갔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고령친화 금융대책’이 제자리걸음이다. 8개월여가 흘렀지만 뚜렷한 변화는 감지하기 어렵다. 그 사이 IT기술과 만난 금융 상품은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이를 악용한 금융 사기 수법도 교묘해진다. 이로 인한 고령층 금융 피해 사례는 늘어만 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디지털 금융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6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고령친화 금융대책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고령친화 금융대책은 금융 접근성이 낮아진 고령층을 위해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일환이다. 버스와 같은 이동 수단을 활용한 이동형 은행 점포 활성화와 노인금융피해방지법 제정 추진이 골자다.

금융위원회가 대책안을 내놓은지 8개월여가 지났지만 개선된 것은 없다. IT조선이 신한·국민·하나·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고령친화 금융대책 발표 후 이동형 점포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동형 점포 운영을 중단한 은행도 존재한다.

시중 은행 한 관계자는 "제1금융권 은행의 이동형 점포 수는 2대에서 8대 사이로 알고 있다"며 "이는 전국을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언제 어디서 이동형 점포가 운영되는지 고령층에 알릴 방법이 많지 않다"며 "홈페이지나 앱에 게시하더라도 고령층이 이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은행끼리 함께 운영하는 공동 점포를 주요 지역에 개설한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화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이동형 점포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매달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위는 또 고령친화 금융대책을 발표하면서 고령층 전용 앱 개발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은행에 배포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는 "고령층 전용 앱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게 없다"며 "자체적으로 큰 글씨 보기 등 고령층을 위한 기능을 개발해 앱에 추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금융위는 고령층 전용 앱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막 완성했지만 이 마저도 현장에 언제 전달될 수 있을지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령층 전용 앱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해 조만간 시중 은행에 배포하겠다"고 말했다.

‘노인금융피해방지법’ 역시 제정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 해당 법은 고령층을 상대로 한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나 착취,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목적이다. 문제는 대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고령층의 금융사고 피해는 늘어만 간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DLF(파생결합펀드)와 옵티머스펀드의 피해자 중 각각 51%와 54%가 60세 이상 고령층으로 나타났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안을 만드는 데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시중 은행과 협의도 거쳐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법 제정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인공지능팀 변호사는 "금융상품은 복잡하고 매번 새롭게 설계되는 경우도 많아 고령층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노인금융피해방지법과 같이 고령층을 보호할 법령과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