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가 1월 출범 이후 대(對)중국 강경 기조를 이어간다. 중국의 첨단 기술·IT 굴기에 제동이 걸기 위한 목적이다. 직간접적 영향권에 들어온 우리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IT 연관 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 기업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 불안요소가 있지만, 미 정부의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부합할 경우 경영 환경에 날개를 다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IT조선은 [바이든 시대 韓 IT] 시리즈 연재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춘 산업별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바이든 시대 개막과 함께 반도체 산업은 미국 안보와 직결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은 국가간 외교 전쟁이자 산업 전쟁이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반도체를 안보의 문제로 규정하고 외교전을 펼친다. 대대적인 중국 견제에 나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술 패권을 중국에 넘기지 않으려는 정치적 의도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경제적 의도로 최근 반도체 분야 이슈에 집중한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 조 바이든 페이스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 조 바이든 페이스북
중국 정부는 2014년 ‘반도체산업발전추진요강’을 통해 투자펀드 조성과 반도체 굴기 추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은 해당 요강에서 반도체는 정보기술 분야의 핵심이자 경제 사회발전과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전략적, 기초적, 선도적 산업임을 강조했다.

2015년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고 반도체를 포함한 10개 첨단산업 분야에서 대표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에서 2025년까지는 70%로 확대한다. 자국 반도체 기업에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10년간 1조위안(17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혀 반도체 굴기를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도체 시장 중 중국 내 1위, 글로벌 5위를 달리는 파운드리 업체 SMIC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 SMIC의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5% 증가한 39억달러(4조7000억원)였고, 순이익도 7400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 흑자를 냈다. SMIC의 지배구조를 보면 사실상 중국 국유기업이다. 중국이 반도체에서 자급자족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핵심 기업으로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제조 2025’ 계획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져 있지는 않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을 달성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SMI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다. TSMC(56%)나 삼성전자(18%)와 격차가 있다.

기술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TSMC와 삼성전자는 이미 선단공정으로 여겨지는 7나노 공정을 돌파해 5나노 공정까지 양산했지만 SMIC는 아직 14나노 공정에 머무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대중 제재가 SMIC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나노 생산을 위해선 극자외선(EUV) 장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 제재를 통해 SMIC에 EUV장비 공급을 차단했다.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으로 바이든 정부가 SMIC에 대한 일부 제재를 완화했지만, EUV 장비 공급 차단은 여전해 SMIC의 기술력 향상을 막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 3% 성장에 그쳤다. 미국 제재로 2019년 19% 성장률 대비 성장폭이 확연히 감소했다. 미국 제재가 계속되는 한 SMIC 역시 지속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SMIC 사옥 / SMIC
SMIC 사옥 / SMIC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 기조를 이어간다.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슈퍼컴퓨터 운영 기관과 관련 기업 등 총 7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슈퍼컴퓨터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반하는 활동에 쓰인다는 이유다. 바이든 정부의 기술 측면에서의 중국 견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동맹’의 가치를 내세운다. 세계적 반도체 공급 대란 시기, 미국은 동맹을 통해 중국을 제치고 반도체 안보를 확보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월 반도체 공급망을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미국 반도체 공급망 확보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반도체 반중동맹은 미국-일본-대만 간 동맹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아시아 국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아시아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일본, 대만과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맞다"며 미 정부의 의중을 설명했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를 포섭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생산의 75%가 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대란에서 안정적 수급을 위해선 아시아 제조사의 협력이 필요하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는 2020년 미국의 요청으로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이어 120억달러(14조7800억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2월 미국과 대만 정부간 고위급 경제회담에서는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에 합의했다.

일본 역시 미국과 협력을 강화했다. 9일 NHK에 따르면 카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성 장관은 8일 지나 레이몬드 미국 상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지면서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양국이 협력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동맹에 아직 한국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있는 한국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12일 백악관에서 열릴 글로벌 반도체 기업 회담에 삼성전자를 초청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구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 정부 역시 최근 한국과 외교장관 회담에서 반도체와 5G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언급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한국의 입장만 난감해졌다.

김양팽 연구원은 "미국 정부도 반도체 동맹에서 한국을 포섭하려는 의도가 크겠지만, 한국은 어느 한쪽에 서기 난감한 상황이다"라며 "다른 외교적 문제에서도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처럼 반도체 문제도 마찬가지 입장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조연주 인턴기자 yonjoo@chosunbiz.com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