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입에 보수적이었던 전통 금융업에서도 인공지능(AI)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 혁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의료 데이터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데이터 활용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지만, 보험업계 의료 데이터 활용은 번번이 의료계 반대에 막혔다. 그 결과 AI 기술 활용으로 보험업 혁신을 돕는 인슈어테크(InsureTech) 발전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더딘 혁신으로 겪는 불편은 고스란히 보험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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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보험 및 인슈어테크 업계에 따르면 각 기업은 의료 데이터 활용 제약으로 서비스 고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보험 상품 개발과 신속한 계약체결 등을 돕는 기술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다양한 보험 상품 개발과 신속한 기술 도입이 필수적인 국가로 꼽히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의료계는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의 길이 열리면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인슈어테크를 적용하려고 해도 의료계는 보험사 계약을 왜 의료기관에서 처리해야 하냐며 맞서고 있다.

보험-의료계 지리한 다툼 언제까지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이슈는 강산이 바뀌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와 금융당국, 보험업계가 합심해 2010년부터 자동으로 실손보험을 청구할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실손보험 계약 이행의 주체는 보험사로 의료기관이 서류 전송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소비자 불편은 날로 가중된다. 실제로 지난해 집계한 전체 실손보험 청구 중 99%는 아날로그 또는 종이 영수증을 찍어 사진을 전송하는 부분적 디지털 방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불편함에 진료비가 소액이라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이용자도 속출하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혁신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인슈어테크 업체들의 발전도 더디기만 하다.

신영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록을 제3자에게 전자적으로 제공하도록 인정했고, 신용정보법도 신용정보 주체의 요청이 있으면 금융기관 등 제3자에 전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은 환자의 진료비 정보를 보유한 기관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인슈어테크 기업은 날로 발전하는데…격차 커질까 우려

주요 선진국은 계약서류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인슈어테크 기업 레모네이드는 보험 가입부터 사고처리, 보험금 지급까지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발했다. 심사와 보험금 지급에 AI를 활용한 덕분이다.

보험 적용분야를 세분화해 주택보험 전문 인슈어테크 기업도 등장했다. 히포엔터프라이즈다. 이 기업은 복잡하고 불편한 주택보험 가입 절차를 60초 이내로 간소화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았다. 혁신 기술은 즉시 성과로 이어졌다. 히포엔터프라이즈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해 70%에 가까운 보험료 수입 성장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보험료 수입은 4억500만달러(4500억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 인슈어테크 기업은 걸음마 단계다. 보험 가입을 간편하게 도울 기술을 개발·적용하며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부터 의료계 반발로 막혀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슈어테크 업계 관계자는 "의료계 반발뿐 아니라 금융당국의 규제 역시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며 "최근 시행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강화된 상품 설명의무로 서비스 개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해외 기업과 격차를 좁히기 어렵고 소비자 불편은 날로 커질 것이다"라며 우려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