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권법으로 제도화…특금법과 조화 맞춰야

"정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아직도 가상자산 시장 과열, 사기 등 ‘현상’에만 집중합니다. 제도화 차원에서는 현상만 볼 게 아니라 이 시장의 본질을 파악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뛰어놀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 형성도 뒷받침이 돼야 합니다."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 옥죄기에 나선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가상자산을 투기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고 ‘열린 규제’를 통해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10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가상자산 시장의 리스크 해소 및 연착륙을 위한 과제’ 심포지엄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가상자산 제도화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 김경신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와 김경신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토론하고 있다. / 김병욱TV 갈무리
(왼쪽부터)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와 김경신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토론하고 있다. / 김병욱TV 갈무리
"시장 자리 잡으려면 인식 개선 필수"

이날 심포지엄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가상자산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정부의 인식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가상자산 업권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크다"며 "시장이 커지는데 투자자 보호 등의 정책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는 가상자산이 금융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개라고 인식하지 않는 모양새다"라며 "이는 ▲블록체인 기술로 인한 금융산업 혁신 ▲소비자 보호 ▲시장질서 확립 ▲법적 불확실성 제거 등을 내세우며 가상자산 규제에 들어간 유럽연합(EU)과는 정 반대의 행보다"라고 덧붙였다.

박수용 서강대 교수도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가상자산 과열, 사기 등의 현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그 본질을 봐야 한다"며 "젊은 세대가 가상자산 산업에서 뛰어놀고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고 가상자산 산업은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가상자산 주무부처로 금융위원회를, 블록체인 기술 육성 주무부처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선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자리에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구분하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익과 가상자산으로 인한 시장 혼란을 균형감 있게 봐야 한다"며 "미국 은행에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도록 승인한 미국 통화감독청도 기술 이점은 잘 이해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업권법으로 제도화 차근차근"

전문가들은 또 가상자산 업권법을 통해 시장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권법이란 영업이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법을 일컫는다. 사업자와 소비자 보호 등 산업 성장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박종백 변호사는 "업권법을 통해 제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외에는 코인의 정의 조차도 내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인 유형 등을 파악해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시행된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VASP)의 신고 요건 등을 정의한다. 하지만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방지(CFT)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산업 진흥 목적을 위한 규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박 변호사는 특히 김병욱 의원이 발의한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업권법이 특금법에 비해 상위 효력을 가진 법은 아니지만, 시장 제도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이로 인해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적 초안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향후에는 업권법이 특금법과 조화롭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신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할 때는 반드시 규제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짚어야 한다"며 "업자와 투자자 보호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세운 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시세조종행위를 비롯해 산업 안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가 무엇인지, 시장 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