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볼모 택배대란 이대로는 안된다

입력 2021.06.16 06:00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의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서울 택배기사 중 상당수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 배송 서비스에 큰 무리가 없지만, 부산·울산 등 경남권과 이천·용인 등 경기권에서는 배송 지연 사태가 극심하다. 코로나19로 택배 이용이 더욱 많아진 국민은 택배 사측과 노조 간 줄다리기의 볼모로 잡혔다.

택배노조의 불만 폭발은 개선되지 않는 업무환경 탓이다. 노조 측은 최근 롯데글로벌로지스 소속 택배기사가 다발성 뇌출혈로 쓰러진 것도 과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경기 성남 운중대리점 소속 임모(47)씨는 하루 배송물량이 250개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해당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오전 7시쯤 출근해 자정을 넘겨서야 퇴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택배노조는 과로사 방지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주 평균 60시간 이내로 노동을 줄일 경우 배송만 전담하는 택배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든다며 물량 감소분에 따른 임금 보전을 요구했다. 또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는 현실을 택배회사가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택배업계는 16일까지 사회적 합의기구 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택배 터미널에 배송되지 못한 물건이 쌓이면서 현재 정상 배송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택배업계 파업은 쿠팡 등 자체 배송 시스템을 가진 업체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쿠팡은 일부 소비자가에게 지연 보상책으로 쿠폰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통업계는 택배 마비가 자체 배송이 가능한 업체로 소비 수요가 몰리게 했다고 분석했다.

노조와 택배사의 엇갈리는 이견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분류인력·기기 투입 시점이다. 택배사는 분류인력 투입시기를 2022년 7월까지 1년 유예해 달라고 주장한다. 분류 인력 투입과 분류 자동화 기기 설치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만큼 합의안 적용 시점을 늦춰 달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연내 투입을 요구하며 분류인력 투입 유예는 택배사의 배불리기 꼼수라며 일갈했다. ‘택배기사 처우개선' 명목으로 택배요금을 인상했는데, 택배기사들의 배송수수료는 평균 8원 인상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택배요금 인상으로 올해 1000억원 이상 초과 영업이익 발생이 예상된다"며 "이는 택배사가 자신들의 배만 불리겠다는 심보 아니냐"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다.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의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무만 남고 수입보전 논의는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사기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택배업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택배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4월 택배단가를 인상했지만, 가격 경쟁이 심해 택배 단가 인상이 ‘업계의 불가능한 숙원'이란 말이 나오는 택배시장에서 일부 회사만 택배요금을 올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작동하는 배송 시스템이 지방에서 멈춘 이유도 택배기사들의 낮은 수익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에는 아파트 등으로 배송물량이 몰려있지만, 지방의 경우 배송처가 분산돼 있고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같은 양을 배송해도 서울 대비 몇 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며 "지방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해도 택배기사들이 가져가는 수익이 낮은 편이다"고 말했다.

택배요금 인상은 필요하다. 택배기사들의 건강을 위해, 효율적인 물류체계 구축을 위해 올려야 한다. 현재 전체 택배 물량의 70~90%를 차지하는 2㎏ 소형택배 배송 단가는 4월에 일부 인상된 요금 기준으로 1850원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똑같은 소형택배 기준으로 일본 택배업체 쿠로네코야마토 배송단가를 살펴보면 수도권내 배송에만 930엔(9400원)의 비용이 든다. 도쿄에서 먼 홋카이도와 큐슈로 보내려면 1370엔(1만4000원)을 내야한다. 기업간 거래로 비용을 낮춘다고 해도 한국보다 더 비싼 700엔(7100원)선이다.

롯데택배 택배기사의 뇌출혈 쓰러짐 사고는 코로나19로 급격하게 늘어난 비대면 물동량에 비해 제자리 걸음을 한 택배업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1992년 국내 택배 서비스가 처음 도입됐을때 요금이던 5000원은 20년간 치열한 경쟁으로 1000원대로 하락했다. 합리적인 비용 산출이 불가능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대로 뒀다간 택배사나 노동자, 국민이 모두 공멸할 수 있다. 택배업계는 사고 예방을 위해 노동형태 전환과 함께 택배요금 인상 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도 택배노조와 택배사의 대립과정에서 중립적의 입장으로 시장의 논리에 맞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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