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 인비저닝 파트너스 대표.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를 통해 투자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이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를 거쳐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재무 및 투자 전문가로 10여년간 일했다. "주식시장을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식의 투자가 아니라 주식시장 바깥에서 기업과 직접 소통해 큰 자본을 직접 투입하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매도하는 식의 투자"였는데, 변수값을 바꿔가며 결과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에 자주 몰입했다. "엑셀 프로그램 안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변화를 주어 그 결과를 확인할 때 마치 ‘작은 조물주’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엑셀 한 줄에 집어넣은 가정이 현실의 세상에서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매 원가를 줄인다는 것은 구매부서의 누군가가 납품업체와 힘겨운 협상을 벌인다는 것을 의미했고, 서비스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콜센터 상담원 수만 고객의 엄청난 불만을 받아낸다"는 것을 뜻했다.

‘작은 조물주’의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감을 느낀 그는 2010년 "투자업계의 기차에서 일단 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투자공부에 천착했다. 6년의 시간 동안 열권에 달하는 외서를 번역했고, 협동조합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다시 투자업계로 복귀, 옐로우독 투자사를 거쳐 현재는 ‘임팩트 투자’를 철학으로 내세운 벤처캐피털 인비저닝 파트너스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임팩트 투자는 "ESG 투자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현재 ▲기후 ▲ 교육 ▲웰니스 ▲미래의 노동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좋은 세상에서 살려는 열망과 돈의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국 큰 힘이 발휘된다고 믿는다"는 제현주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현주 대표/인비저닝 파트너스
제현주 대표/인비저닝 파트너스
- 6년 동안 열권에 이르는 책을 번역하며 공부했다고 했다. 왜. 어떤 마음가짐이이었나.

"커리어 중 가장 긴 기간을 투자업계에서 보냈고, 책에서도 밝혔듯 투자하는 일도, 몸담았던 곳들에서의 생활도 즐거웠다. 그런데 업의 속성상 돌진하는 기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 일단 기차에서 내려보자고 결정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크게는 투자를 하면서 어렴풋하게 깨달은 것들을 명료한 앎으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자본시장에 대해, 그리고 그 시장을 경유하면서 연결된 삶과 투자의 본질에 대해 공부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시기를 보냈다.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경제학의 배신』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등의 외서를 번역한 것도 그러한 과정의 일부였다. 그 과정에서 ‘임팩트 투자’라는 키워드를 만났고, 그 일을 내 직업으로 삼게 되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 이후 임팩트 투자자로 투자업계에 돌아왔다 "임팩트 투자는 ESG 투자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라고 소개했다.

"최근, 특히 올해 들어 ESG,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산업을 막론하고 ESG 요소를 반영하라는 자본시장의 요구가 거세진 탓이다. 자본시장이 환경-사회-기업이 장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이를 명시적으로 투자 전략에 반영하려는 흐름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불가역적인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

지속가능투자(Sustainable Investing)의 스펙트럼을 놓고 보면, 단순히 ESG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투자의 근거로 삼는 방식 보다, 비즈니스 전반에 ESG 요소를 얼마나 잘 내재화했는지를 판단하고 집행하는 투자가 보다 적극적인 ESG 투자라고 말할 수 있다. 임팩트 투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더욱 명시적으로, 목적성을 갖고 임하는 투자를 의미한다. 결과값은 재무적인 수익만이 아니라 그 투자로 인한 환경적, 사회적 변화를 포함한다.

임팩트 투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매우 다양한 투자의 방식과 전략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인비저닝 파트너스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큰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로, 시장의 기회로 전환하는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털 형태로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사다."

- "임팩트 투자로 정말 돈을 벌 수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임팩트 투자의 실천 사례,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면.

"‘임팩트 벤처캐피털’의 성공 사례를 들자면, 지금이야 테슬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테슬라가 초기 스타트업이었을 때 투자한 곳들은 임팩트 투자자가 많았다. 역시 잘 알려진 ‘임파서블 푸드’ ‘비욘드 미트’ 같은 대체육 개발 기업, ‘인디고’ 같은 AI 기반의 혁신 농업 기업, 누구나 운동할 수 있도록 헬스클럽의 문턱을 확연히 낮춘 ‘더짐’ 등등, 이미 전 세계적으로 탁월한 시장성을 증명한 사례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풀고 있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 투자사 리스트를 살펴보면, 임팩트 VC도 있고 일반 VC도 있다. 이것의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보편적으로 겪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큰 시장의 기회를 만든다."

- 임팩트 투자가 항상 수익률이 높은 것 아니지 않나.

"사회적 임팩트, ESG를 고려한 지속가능투자는 특히 불황기, 변동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더욱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왔다. 코로나19로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2020년 상반기에도 여실히 나타나, ESG 투자의 확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중론이다. 2020년 7월 블랙록이 발간한 「지속가능투자: 불확실성 가운데서의 회복력(Sustainable investing: Resilience amid uncertainty)」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지속가능투자 인덱스 중 88%가 시장 대비 탁월한 수익률을 보였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투자도 존재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오랫동안 꾸준히 유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ESG 투자, 임팩트 투자에는 ‘장기전'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게임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도 꾸준한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내고, 궁극적으로 더 큰 가치로 거두어들이려는 투자임을 이해해야 한다."

/인비저닝 파트너스
/인비저닝 파트너스
- ESG 펀드라고 하는데 종목 구성을 보면 좀 이상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는데 삼성의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하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ESG 측면에서 우수한 기업이 늘어나는 속도는 ESG 투자에 몰리는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더딜 수밖에 없다. 자본은 무형의 것이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사람, 재화, 비즈니스가 모두 엮여 있는 기업의 변화는 그렇게 빨리,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상장주식에 대한 ESG 투자로 흘러가는 자본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기업 간 상대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종합적으로 지표를 챙길 여유가 있고 사업 내용적으로 직접적인 네거티브 요소가 없는 대기업이라면, ESG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ESG 투자자의 선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잘하는 ESG 투자와 그렇지 않은 ESG 투자’가 갈릴 것이다. ESG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ESG를 구현하고 있는지를 입증하라는 요구가 뒤따라올 것이다. 그러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ESG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지향’의 요소로 삼을 수 있을지를 답해야 할 것이다."

- E, S, G 중에서 E가 측정하기 가장 쉬우니까 기업들이 탄소배출 등 E에만 신경을 많이 쓴다는 지적이 있더라.

"물론 E의 지표들이 가시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측정이 수월하다는 인식이 있긴 하다. 그런데 E, S, G를 개별적 요소로 보기 때문에 그런 우려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이 세 요건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S의 경우 ‘이해관계자와의 공생’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비즈니스마다 소비자, 임직원, 공급업체, 지역사회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이들이 모두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S에 속한다. G는 이러한 시스템을 더욱 건실하게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투명하고 다양성이 보장된 ‘의사결정구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E에 대한 고려 없이 S가 가능할까? G 없이 S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E, S, G 요소들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두루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다."

- 푸드 테크에 투자하는 펀드도 있나.

"푸드 테크는 많은 임팩트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다. 필자가 속한 회사에서도 기후 변화 대응 및 건강과 웰니스(wellness)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품 영역을 주의 깊게 공부해왔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식물성 대체육을 만드는 언리미트(한국), 방대한 데이터 기반으로 식물성 대체식품을 연구하는 더플랜잇(한국), 세포배양 방식으로 새우살과 갑각류를 만드는 시옥미트(싱가포르), 세포배양으로 콜라겐을 만드는 젤라텍(미국) 등이 있다.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기존의 생산 방식이 야기하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나은 대체식품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기술을 개발한 곳들이다. 단, 젤라텍이 만든 세포배양 콜라겐은 단순 식품 원료를 넘어 의료용 소재로서의 가치를 기대하고 투자했다."

-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의 대표다. 지금은 사명이 ‘인비저닝 파트너스’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사명이 바뀐 이유가 있는가.

"옐로우독의 주요 구성원들이 2021년 8월, ‘인비저닝 파트너스’라는 독립된 투자사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투자 운용역들이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는 거버넌스가 임팩트 지향을 영속하기 위한 전제라는 옐로우독 설립자의 신념과 지지가 바탕이 되었다. 임팩트 투자사로서 장기적으로 더욱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고민하고, 임팩트 지향성을 굳건히 지켜가겠다는 취지다. 그간 운영해온 투자조합(펀드) 역시 인비저닝 파트너스로 이관되거나, 양사가 공동으로 운용해 연속성을 이어간다. 따라서, 출자자와 피투자기업들이 실제적로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다."

- 2017년부터 벌써 4년째 임팩트 투자사를 이끌고 있다. 기업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나.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오면서 국내의 인식도 많이 전환되고 있음을 체감했다. ESG를 특정한 테마, 혹은 사회 공헌으로 볼 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기준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났고 기업들의 질문도, 이를 살피는 주체도 달라졌다. 물론 산업과 기업에 따라 ESG 리스크의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ESG 요소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비즈니스 전반에 스며들게 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도 실무부서 차원을 넘어 기업 리더의 아젠다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임팩트 투자에 관한 대화의 시작점도 달라졌다. 이제는 ‘임팩트 투자'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분들은 거의 없다. 불과 3~4년 전까지 무척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 임팩트 투자가 소비자와도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을까.

"소비자 개개인이 민감한 윤리의식과 기준을 갖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게 되면, 기업과 사회가 이에 부응하지 않고는 영속하기 어렵다. 자기 정체성과 공정에 대한 가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주요 소비층이 되면서, 이미 ‘잘 되는 비즈니스’의 공식도 바뀌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환경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비즈니스와 결속되도록 부단히 노력한 기업이 더 많은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고, 더 많은 투자자의 신뢰를 받게 된다면, 더 건강한 경제적 사회적 메커니즘이 만들어지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누구도 ‘소비자’로만 존재할 순 없다. 소비자는 노동자이거나 사업가이기도 하고,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지구 환경이나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고, 그러기 위해서 기업, 정책, 사회 시스템에 더 투명한 정보를 요구하며, 스스로의 경제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경유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해 보는 행동을 한다면, 임팩트 투자자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