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은 제10주년 지식재산의 날
김찬훈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인터뷰

미국, 영국, 중국 등 글로벌 경제 선도 국가는 지식재산권(IP) 시장에서 총성 없는 패권 경쟁을 벌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식 재산은 곧 기업 자산이다. 2020년 미국 S&P 500 기업의 무형자산 가치는 21조달러(2경4297조원) 이상으로 총자산의 90%를 차지했다. 양질의 IP 확보가 곧 국가 경쟁력인 셈이다.

한국은 2011년 지식재산 기본법을 제정했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지재위)를 신설하는 등 IP 경쟁력 확보에 돌입했다. 지재위를 중심으로 10년간 제도 혁신 등을 통해 세계 4위 특허 출원국 자리에 올라섰다. 2020년 상반기 IP 무역수지가 첫 흑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지재위는 그간 해온 성과보다 앞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고 평가한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하면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이 쏟아지는 가운데, 산업 변화에 발맞춘 제도 혁신과 함께 인재 양성 등 숙제가 산적했다. 국가 행정력을 IP 산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식재산처를 신설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로 급부상했다.

IT조선은 지식재산의 날(9월 4일) 제10주년을 맞아 한국의 주요 과제에 대한 답을 얻고자 김찬훈 지재위 민간위원을 만났다. 김 위원은 "IP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는 경제 주체가 지닌 기술과 노하우, 개성, 문화, 미술, 교양 등 가치로부터 출발한다"며 "지식 재산은 일상 삶 속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힘이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찬훈 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김찬훈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 김평화 기자
김찬훈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 김평화 기자
- 열 번째 지식재산의 날을 맞이하는 소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기업 자산의 90% 이상이 지식재산으로 바뀌고 있는 때다. 그만큼 지식재산의 가치가 부동산 등 고정자산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식재산의 날이 국가의 모든 창조 가치를 담아 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지식재산임을 상기해주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 국내 지식 재산 경쟁력과 해외를 비교한다면.

"한국에서 지식재산 전담 조직(TLO, technology licensing office)을 갖춘 기업은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반면 2, 3차 산업혁명을 특허 등으로 이끌어온 영국과 독일, 미국 등의 다수 기업은 과거부터 TLO를 갖추고 있었다. 2003년 유럽특허청(EPO) 조사 결과에 따르면, TLO 보유율이 미국은 69%, 유럽은 43%로 나타났다. 영국과 미국은 친 특허 정책으로 나라를 살린 곳이다. 영국은 증기기관차로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미국은 레이건 정부 때 전기·전자·컴퓨터 쪽으로 특허를 선점해 2, 3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한참 뒤떨어진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스타트업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IP와 연계해 출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또 산업 각 영역에서 다수 기업이 특허 분석을 통해 특허 회피 혹은 우회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 필수 특허를 개발하는 노력도 보인다."

- 한국의 1인당 특허 출원 건수는 세계 1위 수준이지만, 특허 수준을 가늠하는 피인용 횟수(특정 특허가 다른 특허에 인용되는 횟수)는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상 사업화에 활용되지 않는 장롱 특허가 많다는 의미인데.

"피인용 횟수는 해당 특허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주요 잣대다. 시장에서 활용되지 않는 장롱 특허가 많고 피인용 횟수가 적다는 것은 국내서 만들어지는 특허가 강한 특허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기업과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특허가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

강한 특허는 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많은 매출이나 이익을 가져다주는 특허를 말한다. 외부에서 무효 소송이나 침해 소송을 걸 수 없는 질 높은 특허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진단 키트 업체인 씨젠 사례가 대표적이다. 씨젠은 진단 키트를 내놓으면서 침해 소송이 걸릴 만한 요소를 피했다. 경쟁사 특허를 분석해 회피하는 전략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 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930% 증가한 결과다.

특허는 책상에 앉아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특허를 만들려면 연구개발(R&D) 전략을 세울 때부터 어떤 특허를 만들지 판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IP R&D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재산은 장롱 특허로 이어진다. (타 업체 특허를) 피하고 우회하면서 핵심 특허, 전략 특허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국내 IP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는 무엇이 있을지.

"디지털 전환이 가속하면서 AI, 데이터, 홀로그램 상표, 화상 디자인 등 새로운 형태의 지식재산이 대두한다. 새로운 지식재산을 보호하려면 기존 법안의 개정이 필요하다.

우선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데이터 무단 이용과 취득 등 침해 행위를 방지하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서의 상표 가치 훼손과 혼돈 유발 등 행위를 제재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저작권법은 새로운 기술 환경에 따라 개정해야 한다. 데이터마이닝에 이용되는 저작물의 저작권 침해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불법 저작물 링크 주소를 제공하거나 저작물 권리를 침해하는 홈페이지 운영을 IP 침해 행위로 보는 규정도 있어야 한다. 상표법과 관련해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상표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디자인보호법의 경우 디자인의 엄격한 물품성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또 하나 절실한 것은 국회 계류 중인 데이터기본법이다. 데이터기본법 제정을 통해 데이터의 생산, 거래, 산업적 활용을 촉진하는 동시에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 지식 재산 분야에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나온다. 그밖에 필요한 전략이 있다면 무엇인지.

"지식 재산 시대를 맞아 민간 영역의 모든 산업이 IP화 한다. 이제는 지식 재산 경영을 하지 않으면 회사 출발부터 힘들다. 앞으로 지식 재산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R&D를 수행할 이공계 학생의 IP 심화 교육은 물론, 장래 창업 가능성이 있는 청년층 대상 지식 재산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매년 자연계와 이공계 졸업생은 18만~20만명 정도다. 올해부터 재학중이거나 혹은 대학원 과정에 있는 1만명씩을 전문 IP 인재로 양성하면 2030년까지 최소 10만명의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

현재 국내서 지식 재산을 경영하는 중소·벤처기업은 지식 재산 서비스 기업을 포함해 3000개쯤이다. 이 기업들이 자리를 잡아 지식 재산 경영을 이끌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전문 인재 부족으로 경영이 어렵다는 곳이 많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IP 전략 혁신을 통해 관련 기업 수를 5만여개로 늘리고, 양성한 10만명의 인재를 기업에 투입해야 한다.

차츰 영향력을 잃어가는 지방 대학을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방 대학이 사라지기 전에 지식 재산 관련 학과를 만들어 지원하고, 입학생에게 기숙사비나 학비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주는건 어떨까. 이들은 졸업 후 해당 지역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게 할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방식을 쓴다.

지식 재산 금융 확대도 필수다. 현재 2조원대를 넘어섰지만 2030년까지 30조원 규모로 자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식 재산 금융 중 52%는 담보 대출 위주인데, 그보다는 12%에 그치고 있는 직접 투자비율을 늘려 자금을 융통해야 한다."

김찬훈 위원이 서울 통인동 역사책방에서 IT조선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김찬훈 위원이 서울 통인동 역사책방에서 IT조선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 최근 여권 대선 후보 중심으로 총리실 소속 지식재산처 신설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특허 개념으로 행정을 펼쳤다. 특허권이나 저작권, 지리적 표시, 지식 재산 외교 등 관련 업무가 13개 정부부처로 나뉘어 있다 보니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지식 재산 축이 되는 산업의 디지털화는 물론이고 데이터 경제와 플랫폼 경제, 기술 블록화의 신냉전 질서에 있어서 국가 대응이 불가하다.

따라서 이낙연 후보와 정세균 후보가 총리 시절 겪은 경험을 토대로 4차 산업혁명 시대 특허 행정을 지식 재산이라는 종합 행정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2월 정세균 당시 총리가 주재한 제28차 지재위 회의에서 정상조 지재위 민간위원장이 지식재산처 관련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주장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지식재산처를 대선 공약에 내놓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권 대선 후보도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지식 재산 관련 부처인 특허청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농림식품축산부(농림축산부) 등 부처 간 대립 문제가 있다. 그간 나눠진 권한을 한곳에 모으는 과정에서 부처 이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식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 재산권을 담당하는 특허청이 지식재산처 신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은 아쉽다."

- 지식재산처 신설 논의가 지연되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핵보다 무서운 게 기술이다. 패권 경쟁에 대응하려면 각 부처로 권한이 나눠지기보다는 지식재산처로 일원화해야 한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기술 국산화가 주요 과제로 떠오른 적 있다. 특허 확보가 곧 안보가 됐다. 이처럼 지식 재산을 확대하지 않으면 기술 전쟁판에서 이길 수 없다. 지식재산처를 부인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일본은 2020년 4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인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안보 기획 및 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경제반을 만들었다. 특허를 안보 일환으로 중시하고 있다. 우리도 특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식 재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IP 분야를 논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이 지식 재산을 직접 언급한 적 없기에 이번 회의의 의미가 크다."

- 지식재산처 예상 신설 시점과 신설을 가정했을 때 지재위와의 관계는?

지식재산처가 신설된다면 시점은 내년 대선 이후가 될 것이다. 통상 신임 대통령이 당선되면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기에 정부조직법이 바뀌면서 신설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재위는 국가 IP 전략의 컨트롤 타워다. 지식재산 분야 행정 조정과 미래 설계 역할을 해야 한다. 지재위는 지식재산처 신설 논의가 본격화하면 TF나 특위를 만들어 대응해야 할 것이다. 특허청과 문체부, 농림축산부를 비롯한 13개 부처에 분산된 지식 재산과 관련해 행정 컨트롤 타워 신설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재위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처럼 일반 부처 수준으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 개보위는 2020년 데이터 3법 통과로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협의체에서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됐다. 장관급인 위원장을 선두로 개인정보 관련 정책을 다수 만들어내고 있다.

지재위 역시 부처 수준으로 격상한다면 대통령 의지를 더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재산처가 실무를 담당하면서 지재위 사무처 기능을 한다면 견고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제3차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 수립 전략 /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제3차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 수립 전략 / 국가지식재산위원회
- 지재위 향후 과제는?

"올해 하반기에는 3월 제29차 지재위 회의에서 결정한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할 예정이다. IP 자산화와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및 보호 강화, 국내 IP 글로벌 진출 지원 강화 등이다.

제3차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 수립도 하반기 주요 과제다. 이번 기본계획에는 2022년부터 2026년까지 향후 5년 동안의 지식재산 전략과 추진 과제 등을 담을 예정이다. 우리나라 국가 지식 재산의 최상위 계획이라고 보면 된다. 12월 말까지 기본계획을 완성하려고 한다.

3차 기본계획 비전은 ‘디지털 전환 시대, IP 기반 융복합을 통한 글로벌 혁신 선도’다. 보호 무역주의 시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IP 확보와 IP 제반 제도의 조화, IP 가치 창출 생태계 공고화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재위 산하에 구성된 AI-IP 특위 활동도 있다. AI-IP 특위는 2020년 6월 신설 후 1차 활동을 마친 상태에서 2022년 6월까지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AI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로 떠오른 상태에서 해당 기술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생기는 도용이나 기업 피해 등이 생길 수 있다 보니 이를 논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근 7월 호주연방법원에서 AI 창작 기계인 다부스(DABUS)의 창작물 특허를 권리로 인정한 판례가 나왔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도 AI 지식 재산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AI-IP 특위 역시 AI가 창작한 발명품이나 저작물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릴 예정이다. 특위 활동이 종료하는 내년 6월에 지재위에 결정 사안을 보고하면 그해 말에 권리 인정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같은 과정에서 AI 지식재산 특별법도 나올 예정이다. AI 지식 재산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담는 법이다. 2011년 지식재산 기본법이 제정된 후 가장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