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태계 발전을 위해 마련된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이 조성 목적과 달리 국가 사무에 활용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방발기금 재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에 방발기금 조달 대상이던 방송·통신 사업자의 부담과 불만이 늘어간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업자 중심에서 사안을 보고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 시청자 입장에서 이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송 수단별로 사업자를 구분해 방발기금 조달 주체와 운용 방향을 따지는 대신, 전송 수단을 구분하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 행태에 맞춰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지다.

최근 방송·통신 사업자뿐 아니라 플랫폼과 포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부가통신사업자도 콘텐츠 분야에서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만큼, 방발기금 조달 주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언론학회는 한준호 의원, 김영식 의원과의 공동 주최로 최근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방발기금 운용 적합성을 두고 떠오른 문제 제기에 대안을 마련하면서 줄어드는 방발기금의 확대 방안을 고민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가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최우정 계명대 교수가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세미나에서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방발기금 부과, 사용, 관리의 문제'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최 교수는 미디어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수년간 방발기금을 두고 문제 제기가 지속했다며 이제는 시청자 중심으로 방발기금을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방발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전송 수단을 구별해 재원 주체를 마련하는 등 사업자 중심으로 방발기금을 해석했다면, 이제는 급변한 미디어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도 더했다.

그는 "미디어 소비자 입장에선 방송이냐 통신이냐 상관이 없다. 콘텐츠만 바라본다"며 "주파수든 인터넷이든 전송 수단을 나누는 것은 구석기 산물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을 사업자 중심에 두기보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해석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는 토대로서 방발기금을 사용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 관점의 연장선에서 콘텐츠 분야에 발을 담근 모든 사업자가 방발기금 재원 의무를 지닌다고 봤다. 전송 방법에 상관없이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면, 방발기금과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최 교수 설명이다.

그는 "미디어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미디어 사업자가 (방발기금 재원 마련에) 포함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방송 및 통신 사업자뿐 아니라 플랫폼이나 포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MPP(복수채널사용) 사업자가 있다"며 "나아가 국내법이 글로벌 사업자를 품을 수 있는지도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국내서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공적인 부담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를 수용하는 국민의 미디어 활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나 소외된 이들에게 적극적인 미디어 활용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방발기금이 사용된다면 (방발기금 징수 사업자 확대) 정당성과 법적 성격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정책 세미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정책 세미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 한국언론학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최 교수는 방발기금을 징수하는 주체인 정부 역시 콘텐츠 중심으로 법, 제도를 지원해야 한다고 봤다. 그간 정부가 방발기금 징수에 있어서 일부 사업자를 특정해 수직적인 규제를 보였다면, 이제는 콘텐츠 중심으로 재원 조달 대상을 확대해 수평적 규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또 방발기금 운용에 있어서 목적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조언을 더했다. 현재 방발기금 일부는 아리랑국제방송이나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는 기금 목적인 미디어 산업의 생태계 발전을 위한다기보다는 국가 홍보나 준사법 성격을 지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이같은 지원은 국가 사무로 구분하고 방발기금에선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더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방발기금 문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방발기금법인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기금으로 구분돼 있는 방발기금과 정보통신정진기금(정진기금)을 통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함께다.

그는 "방발기금에서 여러 반대나 저항이 있던 배경에는 기금을 부담하는 사업자가 기금 운용과 관련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데서, 운영에서 배제돼 있는 데서 왔다"며 "지금처럼 (방발기금을) 정부기관에 전적으로 맡긴 후 위탁해서 관리하기보다는 하나의 거버넌스적인 구조를 형성해서 독립된 기금 관리 주체에 의해 운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기금 운용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사업자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42조에 따라 방송통신 진흥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기금이다. 공익 프로그램 제작 지원과 연구 개발, 서비스 활성화, 기반조성사업 등에 쓰인다. 지상파 등 방송 사업자와 이동통신 3사 등의 통신 사업자가 부과한 특별부담금을 재원으로 한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