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게임산업이 발전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산업에 종사한다. 게임에 관심도 많고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장이다."

'게임계의 하버드'로 불리는 디지펜공과대학(DIGIPEN)의 제이슨 추 부총장(사진)이 아시아캠퍼스 설립지를 물색하기 위해 방한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디지펜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1998년 설립됐으며 싱가포르와 스페인 빌바오에 분교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계명대학교와 복수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실무와 프로젝트 중심의 커리큘럼을 통해 졸업생들은 라이엇게임스 등 게임업체 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애플 등 세계 유수의 IT 업체들에 취업한다. 550개 이상의 글로벌 게임업체 동문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2019년 미국 교육부가 발표한 미국 대학 졸업생 소득 순위에서 상위 1%를 차지했다.

설립 당시 워싱턴주에는 게임회사가 9개 뿐이었으나 2019년 기준으로 디지펜이 위치한 시애틀 레드몬드 지역에만 400개 정도의 게임회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약 2만300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레드몬드는 디지펜 설립 후 세계적인 게임산업 허브로 성장했다.

디지펜 아시아캠퍼스 설립 준비차 한국을 방문한 제이슨 추 부총장(COO)을 7일 만났다.

- 디지펜의 가장 큰 장점은.

"체계적인 게임 인재의 양성이다. 디지펜은 매년 미국 입시에서 수백대 1의 지원율을 기록할만큼 인기가 있는 대학이다. 우리의 철학은 천재나 똑똑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관심이 있는 창의적 인재라면 누구나 디지펜의 실무 중심 교육 환경을 통해 게임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인재로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일반 대학은 1~2학년 때 교양 수업 위주로 하고 3~4학년 때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을 하지만, 디지펜은 1학년 때부터 전공과목을 바로 가르친다. 4년 동안 게임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운다."

- 실무와 프로젝트 중심의 커리큘럼은 어떤 것인가.

"다른 대학은 이론 중심 수업이 많아 실무에 적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 디지펜은 매 학기마다 4~5개의 핵심과제가 있다. 본인 수준에 맞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배운 것을 적용한다. 목표는 실습 중심 체계로 게임 개발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실제로 상업화까지 시도하는 것이다. 재학 중 개발한 게임을 상업화 한 대표적 게 유명한 '포탈(Portal)'이라는 게임이다."

- 한 학생이 게임의 모든 분야를 배운다?

"물론 전공 선택에 따라 다르다. 프로젝트 디렉터, 아트 디렉터, 테크니컬 디렉터 등 각각의 역할에 맞춰 배우는 게 다르다. 총괄 역할은 게임의 A부터 Z까지 전반적으로 배우기도 하고 프로그래밍, 디자인, 음악 등 특화된 교육 과정도 있다. 프로젝트에는 이런 여러 과정의 학생들이 참여해 협업을 한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게임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학생들이 협업해야 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졸업 후 게임회사에 들어가서 쉽게 적응한다. 게임은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 한국 게임업체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잘 해 오다가 최근 중국 업체들에게 시장을 뺏기고 있다.

"일반 소프트웨어나 솔루션 시장은 킬러앱(Killer App)이 경쟁 앱을 죽이거나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특성이 있지만 게임은 다르다. 게임의 본질은 늘 사용자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은 일반 소프트웨어 시장과 다르다. 일반 시장은 워드, 엑셀 등으로 MS가 시장을 장악했듯이 특정 업체가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있지만 게임 시장에서는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면 언제든지 시장 점유율이 바뀔 수 있다. 시장을 뺏기고 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텐센트, 넷이즈 등 중국 게임업체들이 성장한 이유는 중국 시장이 매우 커졌고 많은 게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활성화된 영향이 큰 것 같다. 한국 게임시장은 세계에서 6.2%를 차지한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양성되고 있고 색다른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많다. 잘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한국 게임들의 수준을 평가한다면.

"다양한 한국 게임들을 봐오고 있다. 한국 게임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안타깝게도 북미시장에서는 성과가 미미한 편인데 그건 게임 퀄리티보다는 유통, 퍼블리싱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북미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학생들 중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있는데 성과가 좋다. 따라서 디지펜의 독특한 교육체계가 한국, 나아가 아시아캠퍼스에서 제대로 적용이 되면 북미를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게임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계명대와 복수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한지 10년 됐는데, 학생 30명 수준의 작은 과정이다. 4년 과정인데 첫 2년은 계명대 캠퍼스에 파견된 디지펜 교수들이 영어로 교육하고, 나머지 2년은 미국 디지펜 캠퍼스에서 교육한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졸업 후 취업이 잘 되고, 한국 게임업체에 들어가 좋은 리더로 성장한 학생들도 있다."

- 졸업생들이 많이 있는 한국 게임업체가 있나.

"게임업체마나 우리 디지펜 출신들이 있지만 최근 한국 증시 상장에 성공한 크래프톤에 5명 정도의 졸업생이 있다. 이들은 모교에 장학금도 출연했다. 회사가 그 소식을 듣고 1:1 매칭 방식으로 졸업생들이 낸 만큼 출연했다. 이처럼 크래프톤의 시총이 20조원으로 단숨에 한국 최고의 게임기업이 되는데 디지펜 동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글로벌 게임회사가 탄생하는데 우리 디지펜의 아시아캠퍼스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길 원한다."

- 싱가포르 분교가 있는데 아시아캠퍼스를 추진하는 이유는.

"싱가포르 캠퍼스는 싱가포르 정부가 지원했기 때문에 학생의 90%가 싱가포르 학생이다. 싱가포르 이외에 다른 나라에도 교육 받을 인재가 많기 때문에 아시아캠퍼스가 필요하다. 그 인재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아시아캠퍼스도 미국에서처럼 산학협력을 할 여지가 있나.

"당연하다. 중국과 한국 게임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텐센트, 넷이즈 등 중국 업체들이 디지펜 싱가포르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 중국 정부가 게임을 규제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지 게임 산업 전체에 대한 부정적 규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디지펜 아시아캠퍼스는 게임비즈니스 인큐베이팅 및 투자와 연계하는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이 아시아 다른 국가보다 우수한 입지와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 한국은 어떤 강점이 있나.

"한국은 게임산업 육성에 매우 좋은 기업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K팝(K-Pop), K드라마(K-Drama)의 글로벌 성공을 보라. 이러한 음악이나 드라마보다 게임산업은 훨씬 시장이 크다. 또한 게임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온라인이다. IT강국인 한국은 이미 게임산업이 발전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산업에 종사한다. 게임에 관심도 많고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장이다. 이러한 좋은 환경이 우리 디지펜의 교육과 만나 거대한 시너지를 일으키길 바란다."

- 한국은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영리대학 설립을 불허하고 있다.

"수년전 인천 송도에 해외 대학의 한국분교를 유치할 때 제안을 검토한 바 있어 한국 경제자유규역청의 규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사립대학보다는 비영리성이 강한 주립대들이 한국에 오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디지펜은 일종의 사립영리대학이라 한국 정부의 규정에는 맞지 않아서, 사우디나 중국 등 다른 국가와도 산학협력 및 학위과정 운영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에서 협력의 최우선 순위를 갖고 있는 좋은 게임산업 환경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디지펜은 교육 수요가 있고 의지가 강한 파트너가 있다면 한국에 비영리대학법인을 별도로 설립하는 방안을 통해서라도 아시아캠퍼스를 설립하려는 의지가 있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