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필요한 만큼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학생은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각자 직업의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에 대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IT조선은 [이학무의 테크리딩]을 통해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다지기와 이를 기반으로 필수적인 기술 이해 방법을 제공한다. <편집자주>

패러다임이 바뀌는 산업은 기존 산업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선 안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이 필요한 산업이 다수 있으며, ‘탈중앙화 금융플랫폼(DeFi, Decentralized Finance)’도 그 중 하나다.

금융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칫 기존 금융산업의 연장선에서 접근하기 쉽다. 하지만 DeFi는 기존 금융산업과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DeFi의 정의는 ‘탈중앙화 플랫폼에서 만들어진 가상자산을 위한 금융서비스’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탈중앙화 기술을 활용한 금융서비스’와는 매우 다르다.

DeFi의 대표적인 예로 많이 언급되는 ‘스테이킹(staking)’ 역시 기존 예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스테이킹은 블록체인의 블록 생성 방식 중 하나인 지분증명에 필요한 개념이다.

참고로, 블록 생성 방식에는 크게 작업증명과 지분증명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트코인, 이더리움은 작업증명 방식이다. 작업증명에서는 블록을 만들고 검증하는 채굴이라는 과정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블록체인 시스템을 운영한다. 시스템이 제시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가장 빨리 계산한 채굴자가 다음 블록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얻고 보상으로 가상화폐를 얻는다. 작업증명은 블록체인 시스템의 신뢰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높은 비용과 느린 처리속도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작업증명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 지분증명 방식이다. 지분증명은 신뢰 확보 측면에서 현재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채굴이 필요치 않은 장점이 있다. 비용을 낮추고 처리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지분증명은 작업증명과 달리 블록 생성 권한과 보상을 위해 가상화폐를 블록체인 시스템에 예치하는데, 이것이 바로 스테이킹이다. 가상화폐 예치자는 일정한 확률로 블록 생성 권한를 얻을 수 있고, 블록 생성에 대한 보상으로 가상화폐를 얻는다. 이때 권한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예치한 가상화폐의 금액과 비례하는 반면, 블록 생성 보상은 일정하다. 따라서 확률을 통해 보상의 기대값을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이 예금의 이자율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스테이킹은 예금과 개념적으로 유사하나 그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스테이킹처럼 DeFi를 이해하려면 블록체인 시스템에서의 금융서비스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대출의 경우 NFT와 같이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자산을 담보로 대출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때 NFT 담보 대출은 블록체인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이뤄진다. 스마트 컨트랙트로 NFT 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한 후 담보대출을 진행한다. 만기까지 상환이 문제 없이 이뤄지면 권리 제한을 자동으로 풀고, 그렇지 못할 경우 NFT를 매각해 대출금을 회수하는 식이다.

상기의 모든 과정은 제3자의 개입없이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상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운영되는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운영주체가 관여할 필요 없이 서로 확인한 조건대로 자동이행이 된다. 대출 이행 비용이 낮아 플랫폼에 지불하는 수수료 역시 기존 금융보다 적다.

하지만 DeFi를 현실자산(=실물자산+금융자산)의 담보대출로 확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상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진행할 때, 부동산을 담보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혹자는 등기부등본을 NFT로 만들어 블록체인에 등록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은 법적으로 NFT가 아니라 등기부등본의 소유권이 넘어 갈 때 권리 이행이 마무리된다. 현실적으로 소유권 등에 대한 법률적 문제가 수반된다. 이는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결국, 현실자산의 모든 권리행사는 소송을 걸고 경매를 하는 등 법률 시스템 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DeFi가 아무리 탈중앙화 금융플랫폼이라 하더라도 법률 업무를 처리할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기존 금융 대비 비용이 낮아질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법률적 측면에서 DeFi가 현실자산으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DeFi가 목표로 하는 자산의 성격을 고려하면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한다. 현실자산의 예로 DeFi가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 좋은 예가 가상화폐 거래소다. 가상화폐거래소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곳이기 때문에 DeFi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거래소는 전혀 탈중앙화돼 있지 않다. 가상화폐거래소는 법정통화(현실자산)로 가상화폐를 사거나 가상화폐를 팔아서 법정통화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탈중앙화로 구현하기 어렵고 효율적이지 않다. 운영 주체가 있는 이유다. 가상화폐거래소는 기존 금융시스템으로 이야기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DeFi와 구분하고자 CeFi(Centralized Finance), 즉 ‘중앙화 금융플랫폼’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이와 달리, 오픈씨(OpenSea) 등 전형적인 DeFi 거래소를 보면, DeFi가 목표로 하는 자산군의 특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픈씨는 DEX(Decentralized Exchange), 즉 탈중앙화 거래소다. 오픈씨는 NFT를 거래하는 거래소인데,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는 법정통화가 아니라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화폐다. NFT와 가상화폐 모두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에 기존 금융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스마트 컨트랙트만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이처럼 DeFi는 기존 금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이 만든 세상에서의 금융서비스로 이해해야 한다. DeFi의 미래는 블록체인이 만드는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통신서비스 애널리스트 leehakm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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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핸드폰, 디스플레이 등 IT 산업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및 신재생에너지 산업까지 다수의 성장산업을 분석한 신성장 산업 분석 전문가다. 공학을 전공하고 비즈니스를 20년간 분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끄는(lead) 기술 읽기(read)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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