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로슬링은 그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인간이 사실(팩트)보다 편견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짚었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본능의 영향으로 팩트보다 편견에 치우친다는 것이다. 최근 집단 주거지를 중심으로 5세대(G) 기지국에서 나오는 주파수가 인체에 해로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 역시 팩트풀니스에서 지적한 내용이 아닌가 걱정이다.
최근 5G 커버리지가 확대하면서 아파트 단지에 5G 기지국을 구축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 기지국 구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게 나온다. 5G 전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다. 입주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통신용 기지국을 설치할 수 없는 만큼, 이통3사가 집단 주거지 내 5G 품질을 높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정 주파수 대역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사실이라기보다 편견에 가깝다. 인체 유해성을 따지려면 전파를 쏘는 기기의 출력을 살펴야 하고, 이동통신용 기기는 출력 등 여러 항목을 고려한 정부의 적합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해당 평가를 통과해야만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다. 통신 업계는 이미 적합성 평가를 받은 제품을 기지국에 사용하는데, 해당 제품이 사람에게 유해하냐 아니냐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인 셈이다.
편견에 근거해 주장을 펴는 소비자 요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2021년 통신 품질 평가 결과를 보면, 5G 기지국을 단지에 구축했는지에 따라 5G 속도 차이가 컸다. 5G 기지국을 단지에 구축한 아파트에선 5G 다운로드 속도가 913.54메가비피에스(Mbps)였다. 반면 기지국을 구축하지 않은 아파트에선 609.34Mbps 속도가 나왔다. 빠를 때의 10분의 6 수준에 불과했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국립전파연구원(RRA),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등과 생활 속 전자파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RRA는 가정용 커피머신 등 국민이 신청한 생활제품 6종의 전자파 현황을 점검했다. KCA는 유아동시설 등 생활환경 1921곳과 5G 기반 융·복합시설 547곳을 확인했다. 특히, 5G(3.5㎓/28㎓)망 기반으로 운영되는 스마트 공장·캠퍼스, 기업망, 복합문화시설 등 융·복합시설의 전자파 안전도 점검 결과, 총 547곳(3.5㎓망 기반 시설 417곳, 3.5㎓/28㎓망 동시 운영 시설 130곳)에서 측정한 전자파는 인체보호 기준의 0.01~4.15% 수준이었다. 일각에서 우려를 했던 것과 달리 매우 안전한 환경인 셈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아파트 내 5G 기지국 설치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이통사들은 5G 전파 유해성을 이유로 기지국 구축을 반대하는 입주민을 고려해 아파트 단지 내가 아닌 인근 실외에 기지국을 설치한 후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5G 주파수가 유해할 것이라는 편견 탓에 제대로 된 5G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사례인 셈이다.
로슬링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팩트풀니스(사실충실성)를 강조했다. 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정량적·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팩트를 쫓지 않으면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5G 이동통신으로 통신망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한 만큼, 소비자들 역시 팩트에 기반해 5G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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