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다. 적응할 대상이다. 세계 석학 엘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처를 부를 일구는 핵심 요소로 봤다.

그의 메시지는 ‘줄탁동시’로 정리할 수 있다. 부화를 시작한 새는 아직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다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 알을 깨야 한다. 너무 빠르면 알이 물러 깨기 어렵다. 너무 늦으면 알이 굳어 깨기 어렵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생명을 잃는다. 세상 밖이 두려워 알을 쪼지 않아도 생명을 잃는다.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고, 합류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지식시대로 빠르게 변하면서 국경이 사라지고, 사이버 공간이 탄생했다. 재택근무가 늘고, 노동시간은 유연해졌다. 이는 탈대량화, 탈대중화, 그리고 탈중앙화와 연결된다.

이같은 시대의 변화는 ‘제3의 화폐’의 탄생을 예고했을 지 모른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미 오래 전에 특정국가가 임의로 화폐 발행량을 결정하지 않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없도록 세계 화폐 방코르(Bancor)를 제시했었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등 제국을 무너트렸던 재정적자, 부채증가, 통화팽창,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중앙 권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제안이다.

가상자산이 탄생한 배경은 지식사회로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가상자산은 공간이 아닌 가치를, 패권이 아닌 분권을 지향한다. ‘제3의 화폐’ 등장이 예측불가능한 변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변화의 순기능을 수용하되 역기능을 줄이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우리는 어땠을까? 2017년에서 2018년 초 전 세계 비트코인의 40% 이상이 국내에서 거래됐다. 원화 거래량도 상당했다. 빗썸은 한 때 글로벌 1위 거래소로 위상을 떨쳤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이 국내 관료들의 입만 쳐다 봤다. 국내 이슈가 세계 시장을 들었다 놨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은 어땠나? 옛 경험과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변화를 거부했다. 코인 시장은 바다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가상자산 탄생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모든 가상자산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국내외 코인 시장은 초토화됐다. 당시 비트코인은 2800만원에서 360만원 선으로 쪼그라들었다. 전 세계 크립토 겨울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부는 가상자산 사기꾼을 정리하지도, 그렇다고 규제를 준수하려는 사업자를 키우지도 못했다. 그저 시장이 사라지길 원하는 듯 보였다. 가상자산공개(ICO)가 전면금지되면서 기술력을 가진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스위스나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웠다. 해외에 세금을 내고 부를 창출했다. 인력도 빠져나갔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 곳곳에서 가상자산 금융 상품이 등장하면서 자본을 흡수했다. 그 사이 미국은 비트코인 최대 보유국이 됐다. 4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코인 변방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잃어버린 4년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장 육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방법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장은 공약이 제대로 시행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2030 표심얻기에 불과한 공염불에 불과한 건 아닌지 여전히 의심한다. 인수위원회가 시장에 애정을 가지고 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바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이 듣고 연구하고 비교하고 내다보기 바란다. 놓친 게 많지만 아직 가능성은 열려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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