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간호법을 기습 의결하면서 의료계가 패닉에 빠졌다. 대한간호협회는 적극 환영 한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염원하는 분위기지만, 의료계와 간호조무사계가 간호법 제정 철회 총력투쟁을 예고하면서 총파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회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9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간호법 제정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민주당 측이 오후 법안소위 회의 개최 소식을 기습적으로 알린 탓에 국민의힘에서는 최연숙 의원만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간호법 저지를 위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간호법 저지를 위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
관행상 만장일치 처리를 원칙으로 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간호법을 강행 처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남은 복지위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국회 본회의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간호법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법은 복지위 위원장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이다. 세부적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만 간호사의 임금과 근무 환경 등 처우 개선을 위한 내용을 주요 골자로 담고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회 심의 테이블에 처음 오른 뒤 올해 2월과 4월27일에 다시 올랐지만 이해 집단 간 이견으로 법안소위 통과가 무산된 바있다.

기존 쟁점화된 간호사의 업무 법위 원안에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또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였지만, 이날 통과된 안에는 ‘진료의 보조’까지만 포함됐으며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내용은 삭제됐다.

일부 의료계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할 경우 간호사들이 사실상 의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간협, 법안소위 통과 환영…"국민 공감 결과"

간호법은 현재 의사, 한의사 등과 함께 의료인으로 분류돼 의료법 적용을 받고 있는 간호사를 별도의 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이다. 간호계는 그간 간호사가 1951년 제정된 의료법에 묶여 있어 전문성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간호법 의결에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지키는 국민의 법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간협은 성명을 통해 "초고령사회, 만성질환 증가라는 예고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국회가 응답했다"면서 "국회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 결과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간호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없어 간호인력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지역 간 수급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겪었다"면서 "이제 종합적인 간호정책이 시행돼 양질의 간호인력이 양성되고, 높은 수준의 간호가 전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간호법 제정의 첫걸음을 딛게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간호법의 법안심사소위 통과를 계기로 전문화된 간호사의 역할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며 "간호법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24일, 올해 2월10일, 4월27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제1법안소위원회가 개최됐고, 지난 회의에서 여야 위원들의 합의로 간호법 조정안이 마련됐다"면서 "지난 소위에서 복지부의 요청으로 마련된 간호법 조정안에 대한 관련 단체 설명회가 최근 완료됨에 따라 오늘 법안소위가 개최됐고 최종 논의 끝에 간호법이 통과된 것이다"고 말했다.

의사협회 "의회 독재가 만든 비극"…간무협 "83만 간호조무사 죽이는 법안"

간호법 제정안이 법안소위를 넘었다는 소식이 의료계에 전달되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는 잇따라 비판성명을 냈다.

의협은 "간호 악법이 가진 국민 건강 위협 경고에도 국민을 지켜야 할 국회가 일부 정치간호사와 협작해 법안을 강행 처리 한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이 확인돼 보건복지부가 주도해 관련 단체의 실무 협의를 통해 추가로 이견을 조정키로 국회 스스로 주문한 간호법을 다수 의석의 힘을 이용해 법안을 단독 상정하고 일방적으로 의결한 것은 의회 폭력을 넘어 의료에 대한 사형선고다"고 분노했다.

또한 의협은 "새 정부 출범 앞둔 상황에서 합의 없이 서둘러 법안 처리를 시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국회를 장악한 의회독재를 선포해 새 정부를 위협하고 나아가 의료계를 자신의 잣대로 길들이려 했다면, 오만한 판단은 착각이 되어 국민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투쟁에 대한 예고도 언급했다. 의협은 "국회가 추진하는 간호법 제정과 관련해 읍소하거나 조정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간호 악법의 철폐와 처절한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며 "우리가 시작하는 투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와 정치간호사협회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83만 간호조무사 죽이는 간호단독법 제정 철회하라'는 성명을 통해 의사협회와 연태 총파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결사적으로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간 간무협은 간호단독법은 의료법 근간을 뒤흔들며, 보건의료 현장을 붕괴시키는 악법이며,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라고 비판해 왔다. 간호조무사의 업무 및 교육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간호조무사 사회적 지위를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고,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일자리를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혹평했다.

간무협은 "민주당의 폭거는 83만 간호조무사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며 "간호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국회의원 개개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다. 이어 "의협과 연대 총파업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하고 결사적으로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5월 본회의 통과 여부 촉각…당분간 파행 이어질 듯

법안소위에서 간호법이 통과되면서 법안 제정까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두게 됐다. 민주당은 조만간 복지위 전체 회의를 열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계획으로,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도 5월 통과를 목표 시한으로 제시했다.

민주당 복지위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의결 과정에서 "보건 의료체계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법안이 소위를 통과했다"며 "지난번 소위에서 수정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기윤 의원은 "회의 2시간 전에 개최 사실을 통보한 것은 다수당의 횡포와 갑질밖에 안된다"며 "간호법은 지역단체 간 견해차가 심해 그동안 논의를 통해 차이를 좁혀나가고 있었는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의결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의료계 간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새정부를 여는 윤석열 대통령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여당으로 복귀했지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뜻대로 법안이 좌지우지되는 사례가 연속될 경우, 대통령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 총파업 역시 새정부의 입장에 따라 이행 여부가 결정될 방침이다. 다만 이미 총력투쟁을 예고한 만큼 의료계는 언제든 집단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식 법안 상정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있지만 민주당이 자행한 행태를 보면, 어떻게든 간호법을 통과하겠다는 움직임이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나서 새정부 출범과 함께 자행된 어처구니 없는 국회 행동에 중재를 감행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