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가 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 규제 공백의 수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폭락 이후 쏠린 투기성 매매가 업비트에서 상당 부분 거래됐을 거란 관측에서다.

금융당국이 루나 사태 직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폐지 기준 등 대처 방안을 내놨다면 어느 정도 방지도 가능했을 일.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손놓고 보고만 있었던 탓에 막판 투기 광풍이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업비트 ‘나홀로’ 입출금 허용…수수료 수익 100억원 가까이

2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루나 상장폐지를 앞두고 업비트에 엄청난 투기 수요가 쏠린 것으로 파악된다. 테라 1달러 페깅이 깨지면서 루나가 전일 대비 90% 넘게 빠졌던 지난 10일 다른 거래소들은 루나 지갑의 입출금을 닫았다. 사태 초기 업비트를 제외한 빗썸과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주요 거래소들이 모두 입출금 제한을 뒀지만, 업비트는 사흘이나 늦게 거래를 열어뒀다.

루나 폭락 사태 이후 업비트에서 거래된 루나 가격 차트. 투기 물량이 몰리면서 극도의 혼란상황이 연출됐다.
루나 폭락 사태 이후 업비트에서 거래된 루나 가격 차트. 투기 물량이 몰리면서 극도의 혼란상황이 연출됐다.
우선 코인원이 10일 오전 8시 30분 가장 먼저 입출금을 중단했다. 같은 날 고팍스도 루나 지갑을 닫았다. 다음날 오후 5시 30분에는 빗썸이 입금을 닫고, 저녁 7시 30분에는 코빗마저 입출금을 중단했다. 5대 거래소 중 4곳이 사실상 루나 거래를 차단한 것.

이쯤되자, 루나 거래의 99%가 업비트에서 거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루나 차익 거래로 업비트의 수수료 수익만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비트보다 선제적으로 거래를 중단하긴 했지만, 경쟁사인 빗썸 역시 30억~40억원 가량의 수수료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원화마켓 거래소에서 루나를 보유한 투자자수는 15일 기준 28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게 금융당국의 집계다. 지난해 말 9만명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루나 거래 물량은 383만개에서 700억개로 무려 2만배 넘게 폭증했다. 서둘러 정리하려는 투자자와 단기간에 시세 차익을 노리는 세력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빗썸 등 여타 거래소들은 루나 차익 거래를 막고 시세 차이가 나더라도 이를 감수하는 게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라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빗썸 관계자는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해외 물량이 국내로 들어와 기존 투자자들에게 급격한 손실을 일으키고 단타 세력도 유입돼 물리고 물리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 예상돼 이를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고팍스의 경우, 투자 유의종목으로 지정하면 이와 동시에 입출금이 막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불안정하면 자칫 거래 기록에 오류가 발생해 투자자가 재산상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인 시장 ‘유령규제’한 정부, 루나 사태 터지자 법적 권한 없다며 ‘선긋기’

업계에선 정부가 국내 거래소를 방치한 결과, 루나 투기매매 세력이 업비트에 몰릴 수 있었던 것이라 지적한다. 앞서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에 여러 차례 개입한 이력을 보면 이번 태도는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8년 명확한 법적인 근거 없이도 가상자산공개(ICO)를 금지한 바 있다. 나아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국내 시중은행이 거래소에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좌)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지난해 익명 거래가 가능한 이른바 ‘다크 코인’을 상장 폐지하도록 거래소에 입김을 넣은 사례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ICO 금지 4년이 지났고, 지난해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대대적 단속을 공언한지 1년이 지났지만 코인 상장과 상장폐지에 대한 어떠한 가이드도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금융당국은 루나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흐른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관계법령 부재에 따라, 감독당국의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불공정거래 방지, 소비자피해 예방, 적격 ICO 요건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고 선언하는데 그쳤다. 덧붙여 지난 20일 거래소를 통해 코인 투자 위험을 공지하도록 한 게 전부다.

가상자산 거래소, 루나 폭락 대응 ‘제각각’…입출금 공지·상장폐지 달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거래소들은 루나 폭락에 따른 위험을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했다. 업비트가 ‘나홀로 입출금 허용’으로 상당한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었는 이유도 위험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서다.

업비트는 공지문에서 "업비트가 입출금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글로벌 시장 가격과의 괴리 발생 등 시장 왜곡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며 "업비트가 투자자 보호를 등한시하며 수수료 수익만을 극대화하고자 했다면, 루나를 비트코인(BTC) 마켓뿐만 아니라 거래량 비중이 현저히 높은 원화 마켓에서도 거래지원을 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빗썸 등 다른 거래소들은 루나의 차익 거래를 막는 것이 투자자 보호라고 판단했다. 입출금을 막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업비트가 수수료 수익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자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입출금을 허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루나 폭락 이후 입출금 중단 일자와 시각이 모두 다른 건 공동의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라 강조한다. 주요 거래소의 입출금 중단 시점과 공지 시점이 다른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기준도 모두 달랐다. 현재 상장폐지한 곳은 고팍스와 업비트 뿐이다. 빗썸은 오는 27일에 루나 거래 지원을 중단한다. 코인원과 코빗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는 "이번 루나 사태를 계기로 차익 실현과 시세 차익 중 어떤 위험이 더 중대한 지, 입출금 등 거래소들이 어떻게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지 가이드라인이 나오길 기대한다"며 "규제 공백을 틈타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으로 누리려는 시도가 차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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