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사실상 대주주인 ‘이정훈 리스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빗썸 운영사 빗썸코리아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의장이 자신의 최측근인 이재원 대표를 선임하면서 사실상 빗썸 경영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관측에서다. 여기에 이정훈 전 의장이 코인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실소유주 적격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대두된다.

31일 빗썸에 따르면 전날 빗썸 대표가 ‘이정훈 라인’인 이재원 이사로 교체됐다. 빗썸 이사회가 이재원 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함에 따라 오는 6월부터 빗썸은 새 대표 체제로 가동된다.

이재원 이사는 1970년생으로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LG CN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017년 11월 빗썸코리아 경영자문실 고문으로 합류하면서 빗썸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빗썸글로벌 실장을 역임했다.

지난 3월 말 김상흠 아이템베이 대표와 함께 빗썸 이사회에 신규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업계는 해외 사업 이력을 가진 이재원 이사가 빗썸 글로벌 진출과 대외 활동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재원 이사는 대표적인 이정훈 전 의장 사람으로 꼽힌다. 두 사람의 인연만 올해로 15년째다. 이재원 이사는 지난 2007년 이정훈 전 의장이 설립한 게임 아이템 거래소 아이템매니아(IMI)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이정훈 전 의장이 지분 과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싱가포르 법인 SGBK 임원에 등재된 이력도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빗썸코리아 이사회 이사 5명 중 3인 이정훈 측근

업계는 이정훈 전 의장이 빗썸 경영에 더욱 깊이 관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정훈 전 의장 라인이 사실상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경영권 분쟁 소지도 상당수 덜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원 이사와 김상흠 대표를 포함해 빗썸 이사회는 이정아 빗썸 부사장, 이병호 빗썸 감사, 강지연 인바이오젠 대표,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등 6명이다. 이중 의결권을 가진 5명 중 3명이 이정훈 전 의장 측 인사다. 이정훈 전 의장이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빗썸 추정 지분 65%에 근거해 이사 선임권을 행사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상흠 대표는 이정훈 전 의장이 아이템 매니아 대표 재직 시절, 같은 회사 사내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아이템매니아와 합병한 아이템베이 대표이사를 맡을 만큼 이정훈 전 의장의 복심으로 통한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이정훈 전 의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창립멤버인 이정아 빗썸 부사장도 이정훈 측 인사로 분류된다. 이정훈 전 의장은 이정아 부사장이 최근 재합류하자 본인이 빗썸의 실소유주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이사 과반수로 진행된다. 이정훈 전 의장의 측근만으로 웬만한 회사 주요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가상자산 상장 등 이해상충 소지가 큰 사안에 이정훈 전 의장의 입김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특금법 ‘면죄부’ 논란…실소유주 규제 개정 속도 못내는 금융위 ‘책임론’

업계에서는 이정훈 전 의장이 직접 대표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빗썸 경영 의지가 높다는 방증이다. 실제 올 초 진행된 형사재판에서 이 전 의장이 구체적으로 업무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한편, 최근에 논란이 된 빗썸의 ‘상장 지시’ 주체가 이 전 의장으로 보인다는 추측도 나왔다. 다만 이 전 의장이 빗썸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 만큼, 직접 전면에 나서기 보다 자신의 최측근을 포진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전 의장은 현재 1600억원대 특정경제법상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이 BXA 코인 상장을 미끼로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유치했다는 이유다.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회원국으로 하여금 가상자산 사업자의 실소유주를 파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실소유주가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사업장을 악용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금융회사가 대주주 적격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특정금융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죄 이력 대상에 실소유주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또 법 시행 이후 행한 범죄에 한해 사업자 신고를 취소키로 해 이정훈 전 의장이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법망을 피하게 된다. 특금법은 지난해 3월 25일 시행됐지만, 이정훈 전 의장의 사기혐의 행위는 3년 전인 2018년에 이뤄졌다.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전 의장이 사기죄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심사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가 지난해 4월 내놓은 ‘가상자산사업자 자금세탁 위험평가 방안’에 따르면 은행이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위험을 평가할 때 대표자의 횡령이나 사기 연루 이력을 들여다 본다.

빗썸의 대주주 리스크는 금융당국도 부담이다. 실소유주가 범죄 이력이 있으면 사업자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의 특금법 개정을 추진한 지 일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 특금법이 대형 거래소 최대주주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이 전 의장이 유죄를 선고받으면 금융위도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우려다.

빗썸 관계자는 "투자자들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보겠다는 고의가 없기 때문에 (이정훈 의장의) 사기죄 성립은 어렵다. 공판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으며 무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자금세탁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력과 투자를 늘리고 있어 실명계좌 제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원 대표와 김상흠 의장은 풍부한 가상자산 거래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어 빗썸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