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이더리움클래식(ETC), 라이트코인(LTC), 리플(XRP), 대시(DASH)’

가상자산 시장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2017년 7월 빗썸이 상장한 6개 메이저 코인이다. 빗썸은 그해 추가로 비트코인캐시(BCH), 비트코인골드(BTG), 제트캐시(ZEC), 모네로(XMR), 퀀텀(QTUM), 이오스(EOS) 등을 상장하는 데 그쳤다.

당시만 해도 일부 전문가 중심으로 형성됐던 투자자층의 코인 관련 지식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각각의 암호화폐가 가진 기술과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코인에 투자했다. 나름 가치 투자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빗썸의 보수적 상장 정책이 한 몫했다.

업비트가 등장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같은 해 10월 설립된 업비트는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렉스(Bittrex)와 독점 제휴를 맺고 100여개 코인을 대거 상장했다. 특히 100원 이하 엽전주에 개미 투자자들이 몰렸다. 10배는 기본, 100배에서 많게는 1000배 가까이 급등한 사례도 등장했다.

빗썸도 알트코인 상장에 속도를 내면서 양사는 ‘상장 전쟁’을 벌였다. 빗썸이 상장을 공지하면 업비트가 동일 코인을 기습 상장, 고객을 끌어오는 식이다. 결국 국내에 출처 불명의 알트코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극강의 변동성이 발생했다. 상장과 동시에 코인이 급등하는 ‘상장빔’은 물론, 대충 백서를 베낀 정체 불명의 코인이 쏟아졌다. 그렇게 국내 코인 시장은 투기판에 가까워졌다.

업비트는 국내 시장의 양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질적 성장을 이끌지는 못했다. 되레 그 반대다. 도의적 책임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에 반전이 등장한다. 최대주주 리스크가 기업의 명운을 갈랐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은 업비트 자전거래 혐의로 항소심 재판 중이고,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의장은 BXA 코인 사기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지만, 업비트는 최대주주 리스크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왜일까?

송치형 회장은 자신이 블록체인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꾸준히 심어줬다. 개발자 콘퍼런스를 열 때마다 기조연설자로 블록체인 기술을 알리고 시장의 미래를 전망했다. 수시로 언론과 소통했다. 반면 이정훈 전 의장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일원으로 볼만한 이력이 전무하다. 그가 블록체인 시장에 대해 어떤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시장과 대중은 알지 못한다. 되레 빗썸의 숨은 주인으로 오랫동안 세간에 오르내리며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자리했다.

빗썸의 경영권 분쟁도 최대주주 리스크를 키웠다. 송치형 의장이 보유한 두나무 지분은 고작 25%에 불과하지만, 이사회는 친 카카오 성향을 가진 이들을 중심으로 흔들림없이 운영된다. 안정적인 경영권이 구축됐다는 방증이다. 반면 이정훈 전 의장은 우호 세력을 포함해 65%의 지분을 가지고도 끊임없이 김병건 전 BK그룹 회장, 비덴트 등과 경영권 분쟁을 빚었다. 이해관계를 조율하거나 소통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대표이사 체제도 마찬가지다. 두나무는 송치형 의장이 아닌 이석우 대표를 중심으로 일원화돼 움직인다. 이석우 대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사업을 확대한다. 사업 리스크는 언론사와 대관 이력을 바탕으로 메시지 매니징을 통해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과 소통해 우군을 만든다. 삼국지로 치면 조조와 가까운 ‘창업형 리더’다. 송치형 의장의 전적인 신임이 있어야 가능한 리더십이다.

반면 빗썸은 수 차례 대표가 바뀌어 명확한 방향성을 가늠키 어렵다. 경영자가 빗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이같은 환경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다. 매출을 덜 내더라도 안정을 유지하는 게 낫다. 조직은 보수적으로 운영되며 의사결정이 더디고, 신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빗썸 대표는 오나라 손권의 ‘수성형 리더’ 스타일이라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온다.

빗썸은 '부모운 없는 사업자'라는 비운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의 양강구조가 깨지고 빗썸의 이미지가 추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1분기 업비트의 매출은 4268억원, 빗썸은 1247억8600만원으로 약 3.5배 가까이 차이나지만, 2일 기준 장외시장 시가총액 기준 업비트는 10조5000억원, 빗썸은 9200억원으로 10배 이상 벌어졌다.

빗썸이 최대주주 리스크를 줄이려면, 이정훈 전 의장이 경영 스타일을 바꾸거나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정훈 전 의장은 자신의 측근을 이사회에 배치하면서 처음으로 경영권을 장악하게 됐다. 최근 대관과 홍보라인을 대거 강화하면서 전보다 시장 소통이 원활해진 점도 눈에 띈다. 변화가 보이지만, 만에 하나 이정훈 전 의장이 형사소송에서 유죄를 확정받게 된다면 빗썸이 받을 충격파는 예상하기 어렵다.

이정훈 전 의장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이정훈 전 의장도 어엿한 블록체인 생태계의 일원으로 직접 최대주주 리스크 우려를 불식시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빗썸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기업에게 빗썸을 양보하길 바란다. 업비트와 빗썸이 건강한 경쟁으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