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은 중국 CATL이다. CATL은 배터리 폼팩터(형태)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각형을 주력했는데, 최근 잇달아 원통형 배터리 사업을 수주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 중 특히 삼성SDI가 크게 위협을 받는다.

3일 배터리 업계와 외신 등을 종합하면, CATL은 2025년 생산될 BMW 신형 전기차 '뉴 클래스' 플랫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한다. BMW그룹이 자사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원통형 배터리는 가장 오래된 배터리 기술이다. 과거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주로 사용됐고, 테슬라가 전기차에 탑재한 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표준화된 크기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원가 부담이 가장 낮다. 원통 형태의 특성상 공간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CATL의 진격에 가장 초조한 국내 배터리사는 삼성SDI다. 삼성SDI는 BMW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오랜 기간 핵심 공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BMW가 CATL과 손을 잡으면서 삼성SDI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CATL의 폼팩터 노선은 각형과 원통형이 주력인 삼성SDI와 겹친다. CATL이 원통형 배터리 양산체제를 갖출수록 삼성SDI의 먹거리를 뺏어갈 수 있는 셈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도 원통형 배터리를 만들지만 테슬라라는 확고한 공급처가 있고, 테슬라가 아닌 다른 완성차에는 주로 파우치형을 공급하고 있어 CATL과 정면으로 마주치진 않는다"며 "반면 삼성SDI는 매번 CATL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쳐야 하는 입장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여파로 삼성SDI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5월 29일 씨티증권은 삼성SDI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 93만원에서 48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매도’로 변경했다.

피터 리(Peter Lee) 씨티증권 애널리스트는 "CATL을 비롯한 중국 전기차 배터리업체의 생산량 증가에 따른 각형 배터리 시장의 경쟁 심화로 삼성SDI의 대형전지 모멘텀이 약화될 것이다"라며 "삼성SDI는 중국과 한국 경쟁사와 비교해 보수적인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추가적인 시장 점유율 하락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이 배터리 사업을 적극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도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배터리 사업에서는 반도체 만큼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란 확신을 가지지 못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삼성은 5월 24일 2025년까지 45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 등 미래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배터리 부문은 ‘한 단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이 앞서 2021년 8월 내놓은 중장기 투자계획에서도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 및 전고체 전지 등 차세대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한줄 언급에 그쳤다.

삼성SDI의 올해 1~4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2021년 동기보다 1.8%포인트 하락한 4%를 기록했다. 삼성SDI가 5위에서 7위로 두 계단 내려온 반면 SK온은 1.7%포인트 상승한 7.0%의 점유율로 기존 6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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