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무의 테크리딩] 인플레이션 시대의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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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무 미래에셋벤처투자 벤처캐피탈리스트
입력 2022.06.19 06:00
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필요한 만큼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학생은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이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각자 직업의 미래 예상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기술에 대해 이해해야만 한다. IT조선은 [이학무의 테크리딩]을 통해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다지기와 이를 기반으로 필수적인 기술 이해 방법을 제공한다. <편집자주>

20년 이상 지속되던 디플레이션 시대가 마무리되고 인플레이션 시대가 개막했다. 금리 인상 조치로 물가 상승률이 소폭 낮아질 수 있지만, 4~5%대의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4% 이상의 금리도 지속될 예정이다.

최근 물가 상승의 요인은 유동성 확대와 함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대표되고 있는 글로벌 긴장 고조, 이로 인한 에너지 및 식량 가격의 고공 행진 등 여파다. 모두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다. 20년간 디플레이션 정국을 만들어 준 중국의 글로벌 생산 공장 역할과 비행 항로 규제 완화를 통한 물류비 절감, 인터넷 기반의 효율 향상 등은 더 이상 인플레이션 억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며, IT 산업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한다.

IT 산업계는 20년간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공급하는 식의 발전을 해왔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을 통한 효율화가 있었다.

유통 및 물류의 혁신을 통해 가장 싼 가격으로 가장 빠르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 아마존, 이동 환경에서 인터넷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해준 스마트폰, 저렴한 가격으로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게 해준 넷플릭스, 개인의 영상을 쉽고 저렴하게 유통할 수 있게 해준 유튜브, 정보를 무료로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준 구글, 낮은 금액으로도 광고를 할 수 있게 해준 다양한 SNS 플랫폼 등 수없이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호텔 예약 플랫폼,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 인테리어 플랫폼, 교육 플랫폼 등 우리 삶의 세부적인 영역까지 모두 플랫폼이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은 더 많은 플랫폼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돕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디플레이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제품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인하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장기 생존을 위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시장 지배력 강화 전략을 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즈니스를 플랫폼화하는 것이다. 저금리 환경까지 더해지며 기업의 투자 비용 확보를 쉽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리가 오르는 것은 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과 같이 얼마나 어떻게 경쟁력과 지배력을 확보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히 가입자만 확보하는 것에 배팅 하기에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시대인 만큼, 좋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혹은 훨씬 더 좋은 제품이라면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해도 팔리는 시대가 개막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 변동을 나타내는 그래프. 1970~1980년대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최소 4%에서 최대 15%에 달했다. / 미국 고용통계국
4% 이상의 금리가 장기간 유지됐던 1973~1982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당시 새로 등장을 했거나 개발 중이던 제품으로는 영상카세트녹음기(VCR), 워크맨, 이동전화(셀룰러 폰), 노트북 컴퓨터 등이 있다. 이들 제품은 앞서 언급한 ‘훨씬 더 좋은 제품’의 예이다. 이들 제품은 기존에 없던 경험을 제공해준 제품인 만큼, 그에 상응한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예를 들어, VCR이 등장하기 전 소비자는 원하는 콘텐츠를 보기 위해 생방송 시간이나 극장 상영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하지만 VCR은 TV 방송을 녹화하거나 비디오테이프를 활용한 콘텐츠 시청을 가능케했다. 이전까지 누릴 수 없었던 경험인 만큼, 한 대에 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한국 1인당 GDP의 절반 이상의 금액에 팔렸지만, 소비가 꾸준히 늘었다. 미국 1인당 GDP 기준으로도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워크맨, 셀룰러 폰, 노트북 컴퓨터 등 제품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VCR과 워크맨은 각각 1975년과 1979년에 소니가, 셀룰러 폰은 1983년에 모토로라가, 노트북은 1975년 IBM에서 출시했다. 현재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노트북은 1985년 도시바가 선보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4% 이상의 고물가가 이어지던 시기에 상용화되거나 개발 중이던 제품들이다. 기술의 발전 단계가 제품의 출시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무엇보다 소비자의 구매가 이어질 수 있는 시장 여건이 갖춰졌던 것도 제품 대중화의 중요 요인으로 꼽힌다. 수요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물가 상승과 덩달아 뛰는 임금은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준다. 높은 가격에 제품이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 유통과 관련한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순환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지금의 플랫폼 사업 흐름과 다르다고 분석할 수 있다. 사업 초기 자리잡을 때까지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플랫폼 업체는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후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탓이다. 고금리 시대에는 과거 VCR과 워크맨과 같이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가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NFT 및 웹 3.0, 메타버스는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환경과 만나 상당한 기회를 갖는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블록체인과 NFT 기반 차별화한 커뮤니티는 최근 플랫폼 전성시대 때와 달리 적정 대가를 지불하려는 소비자가 몰리는 창구가 될 수 있다. 2021년 일부 NFT 프로젝트가 NFT 민팅을 통해 사업 초기부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고금리 시대 IT 산업 변화의 예고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학무 미래에셋벤처투자 벤처캐피탈리스트 leehakmoo@gmail.com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학무 미래에셋벤처투자 벤처캐피탈리스트는 반도체, 핸드폰, 디스플레이 등 IT 산업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및 신재생에너지 산업까지 다수의 성장산업 분야 애널리스트로 20년 이상 활약했다. 최근까지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공학을 전공한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끄는(lead) 기술 읽기(read)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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