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흉기 난동에 방화… '응급상황' 병원 안전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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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6.28 06:00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대기시간에 불만을 느낀 환자가 방화를 저지른 사건에 이어 얼마전 용인 종합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가 낫을 휘둘러 의사를 위협하는 등 응급실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화사건이 발생한 부산대병원 응급실 모습 / 부산소방본부
의료계는 연이은 응급실 관련 사건사고 속에서 의료진 안전을 위한 재발 방지를 촉구를 나서는 한편 응급실 관련 법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에 강력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응급실 흉기 난동 이어 방화까지…트라우마 겪는 의료진

부산소방재난본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24일 늦은 오후 서구 부산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60대 남성 A씨가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을 바닥과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였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응급실 의료진이 아내를 빨리 진료하지 않는다며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측 진술에 의하면 A씨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아내가 제초제를 먹었다고 생각해 응급실로 데려왔다. 응급실 내원 당시 A씨도 술에 취한 상태로 의료진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렀고, 그의 아내도 정맥 주사를 스스로 뽑으며 진료를 거부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A씨가 불을 붙였지만 병원 직원들이 바로 불을 끄면서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A씨는 어깨와 다리 등에 2~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고, 응급실 환자 18명과 의료진 29명 등 총 47명이 건물 밖으로 긴급 대피했다.

이달 경기도 용인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74세 남성 A씨가 의사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응급실로 찾아와 해당 의사의 목을 낫으로 찍은 사건이 발생했다. 낫에 찔린 의사는 뒷목이 10cm 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 의사는 흉터와 통증 그리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 남성은 해당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70대 여성 B씨의 남편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B씨의 아내는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사망 판정을 받았다. B씨가 소생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A씨는 의사의 조치가 미흡했다고 판단해, 불만을 품고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이 사건을 담당한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살인미수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임세원법’ 등장에도 의료진 폭력 줄이어

의료진 폭력 사건은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해 왔다. 2018년 강북삼성병원에서는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중인 환자에게 피습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나 중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일명 ‘임세원법’이 만들어졌다.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 법은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진을 사망하게 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전 보다 강력한 법이 작동하고 있지만 응급실 및 병원 내 폭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다. 2019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사와 병원 직원이 부상을 입었고, 같은 해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사망 환자의 유족이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에는 부산 북구의 한 신경정신과병원장이 환자의 흉기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21년 9월 발간한 ‘의료인 폭력방지를 위한 통합적 정책방안’ 보고서에 나온 ‘최근 3년 간 진료실에서의 폭력 피해 경험’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의사 2034명 가운데 71.5%가 환자 및 보호자에게 폭언 및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이중 15%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력한 규탄 나선 의료계…폭력범, 건강보험 박탈 요구도

이에 의료단체는 정부에 강력한 규탄을 호소하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대한개원의협회는 "지난 2018년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은 우리나라 의료현장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라며 "이런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 차원의 대책은 실효성이 없었고 전혀 개선될 기미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 이번에도 한 개인의 단순 일탈이나 범죄 행위로 치부하며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다면, 정부나 사법 당국은 물론이고 이를 방관한 모두가 대한민국의 건강권을 해치는 공범이다"며 "의료진의 의학적 권고에 악의적으로 불응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자에게 건강보험 자격을 박탈해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제도를 확립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응급실은 최일선에서 국민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분야를 담당하는 장소임에도 방화, 폭행, 상해, 협박 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법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이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 의료진 폭행에 대응하는 그동안의 대책들이 옳은 방향이었는지 되짚어 보고, 24시간 응급실 현장을 지키는 보건의료인과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안전한 진료환경과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논의할 수 있는 가칭 ‘응급실 안전한 진료환경 개선 TF’를 구성해 기존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병원 내에서는 인간의 생사가 오가는 사투가 일분일초 단위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진 폭행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내원 환자들의 피해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황이 없는 상황 속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심경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의료진에게 화풀이하듯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단순 폭력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중범죄로 여겨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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