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가상자산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전통 금융권의 평가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업계는 골드만삭스를 포함, 금융시장의 큰 손들이 하나 둘 가상자산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란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세계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로고 / 조선DB
세계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로고 / 조선DB
27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가상자산 대출업체인 셀시우스(Celsius)의 자산을 할인된 가격에 인수하기 위해 자금 마련에 나섰다. 가상자산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는 소식통을 인용, 골드만삭스가 20억달러, 한화로 2조56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셀시우스는 루나(LUNA)가 붕괴하면서 크게 휘청거렸는데 이후 별다른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매각 가능성이 커졌다.

셀시우스는 이더리움 파생 코인인 에스티이더(stETH)를 담보로 받고 일정 비율의 이더리움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가 1달러 페깅이 깨지고, 루나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체 디파이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이더리움도 급락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국 봉쇄령, 글로벌 공급망 이슈 문제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가상자산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위험이 커지자 고객들은 앞다퉈 담보로 맡긴 가상자산을 상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셀시우스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모든 대출, 교환, 송금을 중단했다. 당시 이용 고객만 약 170만명, 동결 금액만 80억달러, 한화로 약 10조3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악재가 겹치면서 지난해 10월 260억달러(약 33조5000억원)를 넘어섰던 셀시우스의 자산규모는 최근 118억달러(약 15조3000억원) 수준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현재 셀시우스의 인출 재개는 장담이 어려운 상황이다. 셀시우스가 발행한 셀(CEL)코인은 27일 오후 3시 20분 글로벌 가상자산 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 0.8달러로 지난해 6월 최고점 대비 십분의 일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셀시우스는 파산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컨설팅 업체인 알바레즈앤마살(Alvarez&Marsal)의 구조조정 전문 컨설턴트를 영입했다.

골드만삭스는 시가총액만 1040억달러(133조4000억원)에 달하고 23개국 50개 사무소에 무려 3만명이 넘는 임직원을 보유한 큰 손 중에 큰 손이다. 가상자산 시장 하락장에서 쏠쏠할 재미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테라(UST)붕괴로 골드만삭스의 자회사인 써클(Circle)이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 USD코인(USDC)의 시가총액이 증가한 점도 골드만삭스에겐 희소식이다. 루나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한 USDC로 몰리면서다. USDC는 미국 규제 준수를 우선으로 하는 코인으로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7일 오후 3시 20분 기준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USDC의 시가총액은 558억달러(약 72조6000억원)로 테라가 붕괴하기 전보다 50억달러(약 6조3000억원) 가량 늘었다. 한편 24일(현지시각) 3시 기준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전날대비 7.31% 상승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가상자산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온 투자은행으로 이같은 시각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4년 전인 2018년 대부분의 가상자산이 본질적 가치가 없다며 가치가 결국 제로(0)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가 하면, 2020년에는 가상자산을 두고 "자산의 성격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지난해에는 "비트코인의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골드만삭스의 시각이 바뀐건 올해 3월이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연동 파생상품인 ‘비트코인 차액결제옵션’ 거래를 시작한데 이어, 4월에는 비트코인을 담보로 한 현금대출을 제공하기도 했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에 대한 장기적인 관심이 유지되고 있다"며 "다만 매크로 리스크 확대로 인해 단기성 기관투자자 자금의 매도 압력이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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