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존 리의 오점이 남긴 신뢰회복이라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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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7.04 06:00
한진그룹의 창업주 고(故) 조중훈 선대회장은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다. 새로 들여온 점보기를 담보로 잡아야 했을 만큼 다급한 상황. 이 때 조중훈 회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곳이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떼 제네랄이었다. 이 은행 총재였던 로레 총재가 5000만달러의 지불보증을 승낙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한진그룹은 이후 소시에떼 제네랄과 합작으로 한불종합금융을 설립했다. 한불종금은 지금 메리츠금융지주 모태의 한 축이 됐다.

‘수송보국’을 화두로 삼았던 조 전 회장이 세운 메리츠금융이 리더십 위기로 뒤숭숭하다. 주요 계열사인 메리츠자산운용의 존 리 대표가 불법 차명 투자 의혹으로 사임했다. 2014년 취임 후 작년 초 3연임에 성공해 8년째 회사를 이끌어 왔지만 차명 투자 의혹을 받으면서 결국 하차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메리츠운용을 상대로 수시검사를 진행, 현장 조사 내용을 토대로 법규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존 리 대표가 논란이 일었던 지인의 부동산 관련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업체에 배우자 명의로 투자했는지, 사모펀드 운용 과정에서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의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불법으로 판명나면 재취업 금지 등 제재조치가 취해 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존 리 대표는 ‘가치투자의 전도사’, ‘동학개미운동의 선봉자’ 등으로 불리는 투자업계의 스타 플레이어다. ‘월급의 10~20%는 무조건 투자하라’, ‘장기투자가 진리다’, ‘투자하기 좋은 때는 바로 지금’ 등 많은 투자 격언으로 개미 투자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특히 ‘국내 주식이 디스카운트 돼 있다’며 많은 개미들을 국내 주식 투자의 길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메리츠자산운용도 그의 인지도 만큼이나 훌륭한 회사였는지는 의문이다. 2017년 말 6조원을 넘었던 회사 운용자산(AUM)규모는 현재 3조원 안팎으로 줄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중 5년 이상 투자 수익률 기준 상위 20개 펀드에 메리츠 상품은 찾아볼 수 없다. ‘국내 주식에 장기투자하라’는 그의 주문이 무색한 상황.

회사의 인력 유출도 심상찮다. 업계 관계자들은 존 리 대표와 동고동락했던 운용역들은 이미 회사를 빠져 나간지 오래라고 전한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의 6월 기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현황을 보면 메리츠자산운용의 운용역은 8명으로 이들의 평균 경력은 2년 6개월에 그치고 1인당 운용 펀드수만 26개에 달한다.

존 리 대표가 남긴 오점은 투자업계에 대한 실망에 그치지 않는다. 그를 믿고 투자에 나섰던 동학개미들의 배신감은 물론이거니와 자율 경영과 과감한 권한 위임, 그리고 철저한 성과보상으로 유명한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경영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선대 회장이었던 조중훈 전 회장은 지금 한진그룹의 기초가 된 한진상사를 설립하면서 신용제일을 회사의 기치로 삼았다. 운송을 맡았던 트럭기사가 남대문 시장에 빼돌린 미군 겨울 파카 1300벌을, 큰 손해를 보고 되사와 납품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존 리 대표가 신뢰를 가장 큰 자산으로 하는 금융사 CEO라는 점에서 일개 임직원의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책임감이 너무나 크다. 잃어버린 고객의 신뢰를 어떻게 만회할 지, 조정호 회장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자뭇 궁금해 진다.

손희동 디지털파이낸스부장 sonn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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