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은 급격한 디지털 전환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디지털 지구로 불리는 메타버스가 산업계 전반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법적 정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각종 개념이 혼용돼 규제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메타버스 / 픽사베이
메타버스 / 픽사베이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NH농협은행·핑거·MCC가 구축한 메타버스 플랫폼 ‘독도버스’가 8월 15일 정식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이용자는 가상 세계에 구현된 독도에서 쓰레기를 줍는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 후 도스(DoS)를 얻을 수 있다. 도스는 독도버스에서 사용되는 재화다. 또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발행되는 도민권을 받으면 집과 땅도 소유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이유로 일각에서는 독도버스가 P2E 게임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독도버스 측은 게임이 아니라 메타버스라고 강조한다.

독도버스처럼 똑같은 서비스를 두고 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도 다른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메타버스를 두고 이를 직접 구축하는 기업들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현실 세계를 가상 세계로 이식하기 위해 가상현실(VR)이나 아바타에 중점을 둔 형태도 있고, 가상자산을 이용한 가상 세계의 경제 흐름을 만드는 곳도 있다. ‘세컨드 라이프’ 같은 초창기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형태로 보기도 한다. 가상 세계 안에서도 현실 세계처럼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해 게임 중에서도 온라인게임과 주로 비교된다.

모든 메타버스가 게임이라고 볼 수 없고, 모든 게임도 메타버스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개의 카테고리가 겹치는 부분이 있을 뿐 동일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규제 측면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메타버스가 게임으로 취급되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의 규제를 받는다. NFT 같은 가상자산이 접목된 메타버스가 게임으로 분류되면 게임법에서 금지하는 환금성·사행성 우려가 뒤따른다.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에서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게임위는 환금성·사행성 우려가 있는 게임에 등급분류를 하지 않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P2E(플레이 투 언) 게임처럼 가상자산이 접목된 게임은 국내에서 등급분류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서비스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법적 규제 회색 지대에 있어 혼선이 발생한 셈이다.

지난해 게임위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꼽히는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가 게임인지 질의하자 김규철 게임위 위원장이 "국회 입법조사처가 메타버스는 게임이 아닌 플랫폼이라 의견을 냈다"고 답변했다.

이어 게임위가 개최한 2021 게임정책 세미나를 통해 ‘메타버스는 게임과 유사점이 있지만 다르다’는 게임위 연구용역 결과가 발표됐다. 다만 세미나에서 메타버스에 게임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메타버스에 게임법을 적용하게 되면 NFT 등 가상자산을 접목한 메타버스는 국내 서비스가 어렵다. 독도버스가 공식 홈페이지 FAQ에서 독도버스는 P2E 게임이 아닌 메타버스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게임법 규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크래프톤의 메타버스가 표방하는 창작자 생태계 ‘C2E(Create to Earn)’도 게임법이 적용되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일각에서는 법적 지위에 대한 정의는 커녕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태로 수년째 ‘메타버스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메타버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각자의 메타버스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고 갈고닦는 기간인 것 같다"면서 "P2E를 벗어나거나 새로운 형태의 메타버스 서비스가 많아지면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이용자가 재밌게 즐길거리를 만들 뿐인데 그걸 꼭 정의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