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요금제 경쟁 촉진을 위해 정부가 2년 전 도입한 유보신고제가 오히려 이용자 선택권을 조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신요금 이용약관인가제(요금인가제) 시행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는 SK텔레콤의 5G 중간요금제는 반려는커녕 오히려 장관의 칭찬을 들었다. 유보신고제의 실효성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른 순간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1991년부터 시장점유율 1위 기간통신사업자 SK텔레콤이 신규 요금제 출시 전 정부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허용을 받도록 하는 요금인가제를 시행했다.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의 과도한 요금 인상을 막아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2020년에는 29년동안 시행하던 요금인가제를 폐지하고 유보신고제를 도입했다. 암묵적 담합을 유도하고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다. 인가제를 적용받던 SK텔레콤이 정부에 새 요금제 계획서를 제출하면 KT, LG유플러스가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내놓는 형태로 담합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유보신고제는 정부에 신고만 하면 별도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며,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해 다양한 요금상품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당시 정부 설명이었다. 신규 요금제 출시도 자유로워 다양한 요금제가 나올 것이며, 자연스럽게 이통 3사 간 요금제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이용자 선택지를 넓혀 국민 가계경제를 이롭게 한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기대한 결실은 맺히지 않았다. 실제 사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없이 탁상공론으로 내린 결론은 이통사의 새로운 꼼수를 키워냈다.

최근 데이터 24GB를 제공하는 5G 요금제를 신고한 SK텔레콤의 사례는 대표적 부작용으로 꼽힌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이용자들의 비판이 거세다. 1인당 평균 5G 데이터 사용량이 27GB로 알려졌음에도, SK텔레콤은 굳이 평균치에 모자란 양의 데이터를 산정해 5G 요금제를 내놨기 때문이다.

이통사가 ‘진짜’ 중간 구간의 요금제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용자가 다 쓰지 못해도 무조건 비싼 요금제를 이용하는 게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서다.

통신 서비스는 전자제품이나 과자같은 실물 제품처럼 판매 시 원가가 비례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주파수 할당과 설비 투자 비용 등이 필요하지만, 단순히 100GB 요금제 원가가 24GB 요금제의 4배는 아니라는 뜻이다.

SK텔레콤 5G 가입자 수는 1100만명을 돌파했다. 5G 요금이 1000원만 내려가도 회사 입장에서는 1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잃게 된다. 이런 특성을 아는 KT, LG유플러스가 단순히 가입자 유치를 위해 SK텔레콤과 차별화 한 중간요금제를 내놓으며 모험을 할리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효성이 없다고 정부가 요금제 출시를 막을 수도 없다. 유보신고제가 도입됐기 때문에 이용자나 경쟁사에 큰 피해를 끼치는 등 명분이 있어야 반려가 가능하다.

정부 말대로라면 인가제가 폐지되고 요금 출시가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구간의 데이터 요금제가 이미 생겼어야 했다. 정부가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5G 중간요금제를 선정해 이통사를 압박할 필요도 없었다. 이상은 높았는데, 현실은 SK텔레콤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24GB 요금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20일 첫 기자간담회장에서 5G 중간요금제를 신고해준 SK텔레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취임 2개월째를 맞이한 이종호 장관에게 실효성 논란을 빚는 유보신고제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SK텔레콤은 데이터 증량을 최소화 하며 ‘장관님’의 감사 인사까지 받아냈다. 24GB 제공 5G 중간요금제가 성공작으로 둔갑해버린 씁쓸한 순간이다.

이인애 기자 22na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