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만명에 육박하는 등 확산세가 거세지자, 5차 유행 때처럼 감기약과 해열제 대란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제약사에 증산 노력 등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당부하는 한편, 제약업계도 공장 비상 가동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기약과 해열제 대란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정부와 제약사들이 다양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 아이클릭아트
감기약과 해열제 대란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정부와 제약사들이 다양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 아이클릭아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여름철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됨에따라, 동네 약국과 편의점 등을 중심으로 처방이 필요없는 감기약을 비롯해 관련 처방약까지 품귀현상이 나타나면서 곧 공급 대란이 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에 식약처는 7월 4일 종료한 ‘감기약 수급현황 모니터링’을 재가동 시켰다. 앞서 식약처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시중 감기약 수급 안정화를 목적으로 올해 3월부터 감기약 수급현황 모니터링을 실시해 왔다.

효과가 동일한 다양한 감기약을 구매할 수 있다는 대국민 홍보도 시작했다. 현재 해열제 568개 품목, 기침·가래약 569개 품목 등 다양한 감기약이 생산·유통되고 있어 병·의원에서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제약사들이 감기약 생산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며 "감기약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고, 이전 3·4월보다 여건이 좋은 상황으로, 촘촘하게 보고 받기보다 2주 간격으로 확인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규모가 늘어날 경우 1주일 혹은 매일마다 모니터링 하는 방식으로 다시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약사는 감기약과 해열제, 진해거담제 등 의약품의 생산·수입·판매·재고량 등 수급현황을 보고해야 한다.

또한 적정량 처방·조제 판매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계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의료기관에는 적정량 처방을, 약국에는 1인당 적정 수량 판매를 요청했다.

제약업계 역시 당초 여름휴가를 기점으로 공장을 셧다운하고 하반기 점검에 돌입하는 관행을 철회하고 의약품 생산을 지속할 방침이다. 보통 제약업계는 8월 첫 주동안 공장을 일주일간 셧다운 한 후 설비 점검 기간을 갖는다.

하지만 감기약 수급 불안 조짐에 따라 대원제약을 비롯해 동아제약, 삼일제약, 삼진제약, 동화약품 등 대표적인 감기약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공장을 정상 가동키로 했다. 특히 대원제약은 감기약 품귀현상으로 인해 9월에 예정된 감기약 시리즈 ‘콜대원’ 리뉴얼을 한달 앞당겨 단행했다.

삼일제약은 어린이 해열제 ‘부루펜 시럽’의 안정적 재고 확보를 위해 휴가 기간 중 부루펜 생산라인을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밖에 해열진통제 ‘게보린’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필요 시 공장을 임시 가동시킬 계획이다.

의약품 유통업계도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최근 대한약사회는 국내 최대 의약품 유통기업인 지오영의 인천물류센터를 방문해 감기약 수급 대책을 논의했다. 지오영 측에 따르면 최근 종합감기약, 해열진통제, 인후통·진해거담제, 구강통증 완화제 등의 수급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베타딘인후스프레이, 콜대원, 판피린, 판콜, 시네츄라, 코프시럽 등 다빈도 의약품들은 원료 부족에 따른 생산 부족으로 약국에 부득이하게 공급 제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아세트아미노펜 원료 수급 어려움에 따른 재고 확보는 가장 시급한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지오영 관계자는 "그동안 판매가 많지 않았던 제품이 최대 20배까지 주문량이 증가하면서 재고 부족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아세트아미노펜 등 원자재 수급 부족, 생산설비 확대와 생산인력 증원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감기약 증산이 마냥 쉬운일은 아니다. 전문의약품의 경우 ‘사용량-약가 연동제도(PVA)’로 인해 판매량이 많을수록 약가가 내려가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는 마냥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구조다.

PVA는 적용 후 2년 뒤 발생하는 데, 정부 요청으로 증산을 늘릴 경우 추후 보험약제 상한가가 인하돼 약값이 내려가게 된다. 현재 감기약으로 주로 사용되는 해열제, 진통제, 진담제 등이 대부분 PVA 적용 대상 전문의약품이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PVA 지침 중 하나를 "감염병 치료 약제의 일시적 사용량 증가가 감염병 위기에 대응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라면 협상 참고가격을 보정하도록 한다"고 명시해놨다.

하지만 제약사는 감기약 생산량 증가가 ‘감염병 위기 대응’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직접 증명해야 함으로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품귀 현상이 빈번히 일어날 때마다 제약사들은 사회에 공헌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먼저 발동하지만 PVA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정부와 규제당국은 관련 법안에 대해 한시적으로라도 대안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