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매도는 죄가 없다

북마크 완료!

마이페이지의 ‘북마크한 기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북마크한 기사 보러가기 close
입력 2022.08.08 06:01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라떼’들은 다들 한 번씩은 봤을 영화 ‘넘버3’의 한 대목. 현직 검사로 분한 최민식은 포장마차에서 만난 조직폭력배 우두머리인 한석규에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니?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아주 X같은 말이지"라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사람이지, 죄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일갈한다.

공매도가 뜨겁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는 주식시장의 원흉으로 여겨지지만 정부 대책은 번지수를 제대로 못찾는 느낌이다.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겠다는데 근본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불법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방안을 살펴봐도 결국 모니터링 강화와 처벌강화, 조사강화 등이 골자로 여전히 사후처벌 위주다.

공매도의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과열종목 지정 확대와 함께,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담보 비율을 낮춰 개인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이쯤되면 공매도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애매하다. 현재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공매도의 전면 재개 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면 주식을 빌려서 판뒤, 실제 주가가 내려갔을 때 싼 값에 주식을 다시 매입, 차익을 내는 주식 매매 방식이다. 설명만 들어도 뭔가 복잡해 보이는터라 개인 투자자가 접근해 실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기관 투자자들이 주로 활용한다.

이에 개미들은 공매도가 주가하락의 주범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특히 외국인과 대형 기관들이 불법을 자행하며 동학개미들의 피땀 어린 돈을 털어간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330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가 지금 2400선까지 밀렸다. 영끌로 주식을 사모았던 2030들이나 파이어족을 꿈꾸며 자신의 미래를 주식과 맞바꾼 직장인들, 십만전자를 고대하며 삼성전자에 예금하듯 쌈짓돈을 집어 넣었던 많은 투자자에게 공매도만큼 미운 게 없다.

실제 그럴까. 거래소가 금융감독원에 통보한 공매도 사건 적발건수는 2020년 12건에서 지난해 56건, 올해는 80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적발된 불법 공매도의 대부분은 증권사의 실수나 착오에 기인했다. 주가조작과 관련됐거나, 주가조작을 의도한 불법 공매도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최근 주가 하락 기간 중 주요 투자자가 불법 공매도에 본격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얘기다.

실제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객관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최근의 주가하락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상승과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학개미들의 아우성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매도 불법 뿌리 뽑으라"는 엄포에 공매도가 다시 공공의 적이 됐다.

공매도는 꾸준히 우상향 할 것이란 시장 기대의 반대방향에 베팅하는 고도의 투자 기술이다. 주가가 오를 경우 손실이 큰 만큼, 나름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주식을 사둔 다음 하락장에 대비, 헤지 용도로 활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다.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정화기능은 물론, 엄청난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기폭제로 작용, 선진시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공매도를 범죄시하는 시선 때문에 MSCI가 한국을 선진국 시장에 편입시키지 않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다시 영화 얘기. 2016년 개봉한 ‘빅쇼트(The Big Short)’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본시장의 허점을 제대로 파악한 천재 투자자들의 실화를 그렸다. 이들은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부실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리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를 깨닫고 시장과 반대 포지션에 투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판단이 맞았음이 드러난다. 그들은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봤고 분석하고 투자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폭락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자유에 근거한 자본주의란 그런 것이다.

손희동 디지털파이낸스 부장 sonny@chosunbiz.com






0
주요 뉴스
지금 주목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