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7월말 ‘의료공백’으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의사 부족 원인에 대한 엇갈린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국내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는 입장과 기피 학과 발생 및 저수가로 인한 의사 부족일 뿐 인원 수 부족이 아니라는 입장이 대립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전경. /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전경. / 서울아산병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망한 간호사 A씨는 소위 뇌출혈로 불리는 뇌동맥류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뇌동맥류는 뇌혈관 벽이 약해져 꽈리처럼 부풀어 있다가 터지는 초급성 뇌질환이다. 당시 당직 의사인 뇌혈관외과 의사는 대퇴부로 관을 삽입해 출혈부위를 막는 중재시술을 펼쳤지만 피를 멈추는 데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당시 상황이 뇌혈관외과 의사여도 머리를 여는 수술 전문의가 아니면 적극적인 상황 대처가 불가능했다. 이에 해당 의사는 그시각 개두(開頭)수술 의사를 수배해 서울대병원으로 A씨를 옮겼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신경외과 의사가 25명이나 존재하지만 그들 중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뿐이었다. 이들 모두 사건 당일 해외 학회를 나갔거나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소속 병원으로 빠르게 복귀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의사 수 부족이 낳은 결과…의대 정원 확대 해야

현재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의료 공백이 발생할 때마다 의사 수 부족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은 "수술할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 수밖에 없다"며 "의사인력 부족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원내 직원 응급수술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건노조는 "17년째 제자리걸음인 의대 정원을 수요에 맞게 대폭 확대하고 응급·외상 등 필수 의료를 책임질 수 있게 양성과정을 개편해야 한다"며 "정부는 의사 인력 부족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간호사협회는 "국내 초대형 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받지 못해 발생한 죽음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운 중대한 사건이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번 사건을 두고 "코로나19로 드러난 부실한 공공의료체계에 이어 부실한 응급의료 대응체계와 부족한 의사인력 등 우리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재확인시켜줬다"며 "서울아산병원은 최우수 등급인 1등급을 받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정부로부터 수가 인센티브 등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어 수가 부족이라는 변명으로는 이번 사건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고 전했다.

전반적인 국내 의료 체계 문제…힘든 학과 기피가 낳은 인재(人災)

의료계는 의사 수 부족만 봐서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신경외과 의사 수는 3025명이지만 급성 뇌동맥류를 해결하기 위한 개두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146명 남짓으로 파악된다.

방재승 분상서울대병원 뇌혈관외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뇌혈관외과 의사 2명이 365일 ‘퐁당퐁당 식’ 당직근무를 했다"며 "나이 50세 넘어서까지 자기 인생을 바쳐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사도 실력있는 의사가 되려면 세계학회에 참석하여 세계적인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수준이 올라가는데,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시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뇌혈관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지원자가 급감하다 못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아산·삼성서울 등 소위 국내 ‘빅5’ 병원에 뇌혈관 외과 의사는 기껏해야 2~3명뿐이다. 큰 대학병원은 그나마 뇌혈관외과 교수가 2명이라도 있지만,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대한신경외과학회에 따르면 5~6시간이 소요되는 뇌동맥류 수술 수가(상급종합병원)는 290만2920원에 가산료가 붙어 377만원 정도다. 이는 쌍꺼풀 등 성형수술이나 초음파 리프팅 시술 비용과 비슷하다.

기피 학과 지원하지 않는 의대생…필수 진료과목 대부분 부족현상

신경외과 의대 정원은 항상 초과할 정도로 의사 수가 많지만 주로 척추질환 쪽에 쏠리고 뇌혈관 전문의를 선택하는 의사 수는 극소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이 전공의 인력 부족이 심각한 필수 진료과목으로 꼽힌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연속 정원 대비 75%를 채우지 못하고 있고, 선천성 심장병 수술이 가능한 소아 흉부외과 의사는 전국에 20여명 남짓에 불과하다"며 "모기에 물렸다며 119로 신고하고 새벽에 대학병원 피부과 당직의를 찾아오는 현실은 단순히 의사와 의료기관에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협의회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필수 의료 분야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저수가 체계를 개선하고,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인 사망은 있어서도 안될 일이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되는 핵심 원인을 파악해야만 한다"며 "특히 선호 학과에만 몰리는 의과생들을 탓할 것이 아닌 구조적으로 어쩌다 국내 의료 생태계가 이렇게 됐는지 국가와 의료계가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