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국회에서 외과계의 몰락을 주제로 공청회를 실시하며 이를 방치할 경우 수술할 의사가 없어 국민의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외쳤지만 메아리에 그쳤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수술방에 갇힌 신경외과 정책, 이제는 바꿔야한다’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김우경 신경외과학회 이사장은 이같이 발언했다.

지난달 의료계에 충격을 안겨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은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 사건이 터진 일주일은 그저 의사 수 부족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대중의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시작으로 해당 문제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정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과목에서 충분한 숙련의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 의료 체계 전반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의료진인 간호사가, 그것도 병원에서 긴급수술을 못해 사망했기에 이슈가 됐을 뿐, 국민 다수에게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크나큰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빅5’ 대형병원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가나다순) 등이 있다. 문제는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빅5 의료기관 과별 의사 분포 현황’을 보면, 뇌혈관 질환과 관련된 신경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전체 병원 전문에 비해 10%도 안되는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뇌혈관외과학회, 뇌혈관내치료의학회 소속 전문의들은 수가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용배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는 "현재 수가를 살펴보면 1년간 (개두) 수술한 결과 인건비, 재료비 등을 포함해 -4% 적자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내 뇌동맥류수술 상대가치점수는 단순과 복잡으로만 구분할 뿐 복합적인 수술에 대한 추가적인 수가가 붙지 않는다. 문제는 대다수의 뇌동맥수술을 단순 수술로만 끝나지 않을 경우가 지배적이라고 의료계는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일본은 뇌동맥류 유입 혈관 클리핑과 뇌동맥 경부 클리핑을 구분하고 1개소만 한 경우와 2개소이상 한 경우를 구분한다.

이렇다보니 뇌혈관 관련 수술을 맡아야 하는 과목은 점점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87개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한해 신경외과 전문의가 80명 배출하면 이중 뇌혈관 전공 전임의 지원자는 20명도 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사건처럼 국민이 적시(適時)에 개두술(두개골을 가르는 수술)을 받고자 한다면 실제 250명의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국내 의료진은 30여명 내외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뇌혈관 전문의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 될 정도로 고령화에 치닫고 있다는 점도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뇌혈관분야뿐 아니라 산부인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분만 의료기관은 2016년 607곳에서 2020년 518곳으로 14.7% 감소했으며, 지난해 6월 기준 474곳으로 더 줄었다. 전공의 확보율 역시 70~80%에 머물러 있고, 이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에 거주 중인 임산부는 원정출산을 감행해야만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이달 초부터 다양한 의료계 단체들을 만나 논의하고, 의료인력실태조사를 본격 가동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필수의료지원 전담조직(TF)를 통해 중증의료 수가 조정, 중증응급환자 중심 전달체계 개편, 전문과목 세분화 등 관련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의는 "국내 수가 제도 개선에는 수많은 공론화가 필요한데, 필수의료만 건드려서 될 문제였으면 진작에 개선됐을 사항이다"며 "수가를 개선한다고 해도 실제 의대생들이 고생길이 뻔한 신경과를 과연 지원할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다"라고 분석했다.

많은 의료계 관계자들도 이번 사건이 5년전 메아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국내 의료 시스템을 풀기위해서는 해결해야할 숙제가 한 두가지가 아닐 뿐더러 국가 의료정책 수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여태 공석이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죽음을 통해 이 사회에 필수의료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질 수록 조금이라도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지리라 희망하는 것 만이, 이 나라의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일뿐, 실제 노력과 선진 의료의 현실화는 정부와 입법기관에 달려있다.

지금 어딘가에 이러한 상황을 모른채 긴급수술을 못받아 허무한 죽음을 맞고 있는 국민이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인식했으면 하는 바이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