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열리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범보건의료단체들이 간호사 업무범위·처우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연대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간호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인 가운데 간호법 제정을 완료하고자 하는 간호단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의료단체 간의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의료연대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연설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의료연대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연설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13개 범보건의료단체와 함께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의료연대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앞으로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협력을 통해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간호법에 대한 완전 철회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날 출범식에는 의협을 비롯한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이 참석했다.

보건의료 원팀(one team) 해치는 ‘간호법’…의료법 개정 통해 보안 가능

보건의료연대는 간호법이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의료계 전체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아가 단순히 간호법 저지에 머무르지 않고, 보건의료직역간 업무와 역할을 제대로 정립해 업무침해를 방지하고,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간호법 저지를 위해 다양한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출범식에 참석했다. / 김동명 기자
간호법 저지를 위해 다양한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출범식에 참석했다. / 김동명 기자
이필수 의협 회장은 출범식 개회사를 통해 "13개 단체가 국회 앞에 모인 이유는 그간 간호법 저지를 위한 연대행동과 궐기대회에 공동으로 참여해온 범보건의료계 13개단체가 앞으로도 간호법 법안 완전 철폐를 위해 유대와 공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라며 "간호단독법은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미명 하에,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의 헌신과 희생을 철저히 무시하고 도외시한 편향적이고 부당한 법안이다"고 밝혔다.

이어 "간호사 직역만이 코로나19 방역의 주인공이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의 사투에서 어느 누구도 구슬땀을 흘리지 않은 보건의료종사자는 없다"며 "원팀(one team)으로 일하는 의료현장에서 과연 보건의료 타 직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호사만을 위한 간호단독법의 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회장은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은 곧 간호사의 처우개선’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과 언론을 호도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기존 의료법 등 관계법령 개선을 통한 간호사 처우 개선을 시도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며 "간호법이 아니더라도 기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을 통해 충분히 간호사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광래 간호단독법 저지 제2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천광역시의사회 회장)은 "간호법은 간호사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보건의료직역의 업무를 침탈하고, 보건의료계의 혼란과 갈등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은 악법이다"며 "13개 보건의료연대의 간절한 호소에도 국회가 간호법 심의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400만 각 단체 회원들이 참여하는 총궐기대회를 포함한 강력한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초고령시대를 대비한 보건의료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의료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런데도 대한간호협회는 의료법을 일제 잔재라고 모독하고, 간호법이 보건의료의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건의료연대는 검사의 경우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가, 보건의료정보관리는 보건의료정보관리사가, 간호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응급구조와 환자이송은 응급구조사가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등 각 직역의 보건의료인들이 고유한 전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에 근거해 역할정립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초고령시대에 적합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간호단체 맞불 토론회 개최…열악한 업무 현실 강조할 듯

반대로 간호단체는 간호법 제정 촉구를 위한 맞불작전에 돌입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4일 국회에서 지역별 간호사 수급 불균형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자리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강선우·최종윤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최연숙 의원 주최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간호사 적정수급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이 진행된다.

국회의사당역에 설치된 대한간호협회 광고. / 김동명 기자
국회의사당역에 설치된 대한간호협회 광고. / 김동명 기자
간협은 임금격차와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지역별 간호사 수급 불균형이 확대되고 있어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취할 예정이다. 앞서 간협은 ‘2021 간호통계연보’를 통해 간호대 입학생은 늘고 있지만 지역별 수급불균형은 해소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간호사 수가 증가한 지역도 있었지만 반대로 줄어들거나 제자리걸음인 지역도 있다는 게 간호협회의 주장이다.

또한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216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1 병원간호사 근로조건 실태조사’에서 신규간호사 연봉은 최소 2000만원부터 4900만원으로, 2.9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지역별 간호사 수급불균형 심화를 개선하기 위해 근무환경 개선과 의료기관들의 법적 인력 준수 등 법적 의무화 장치 마련을 위해 간호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간호사 근무환경과 처우개선 등을 통해 숙련된 간호사가 떠나지 않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법 개정 논의에 앞서 간호사만을 지칭한 법안을 새로 만들겠다는 입법부의 취지가 여러 의료단체를 분노케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간호법이 보건복지위원회를 넘어 이미 법사위로 넘어간 상황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장시간 계류 중인 법안을 적극 통과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 간호법 제정이 현실화될지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